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4- 동학의 발생 (국사 교과서 p228-229)

동학은 1860년에 경주 출신인 최제우가 창도하였다. 동학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시천주(侍天主)와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양반과 상민을 차별하지 않고, 노비 제도를 없애며, 여성과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회를 추구하였다. 조선의 지배층은 신분질서를 부정하는 동학을 위험하게 생각하여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현혹한다는 죄로 최제우를 처형하였다.

천주교는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기에 탄압이 완화되면서 백성에게 활발히 전파되었다. 조선 교구가 설정되고, 서양인 신부가 몰래 들어와 포교하면서 교세가 확장되어 갔다.

천주교의 교세가 커진 것은 세도 정치로 말미암은 사회 불안과 어려운 현실에 대한 불만, 그리고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논리, 내세 신앙 등의 교리가 일부 백성에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5- 농민의 항거 (국사 교과서 p229-231)

19세기의 세도 정치하에서 국가 기강이 해이해진 틈을 타 탐관오리의 부정과 탐학은 끝이 없었다. 삼정의 문란(*1)으로 극도에 달한 수령의 부정은 중앙권력과도 연계되어 있다.

농촌 사회가 피폐하여 가는 가운데 각지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그렇지만 관리들의 부정과 탐학은 시정되지 않았다.

(*1) 삼정의 문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수취 제도 문란으로 전정(전세수취 제도), 군정(군포 징수제도), 환곡(구휼 제도)의 문란을 말한다.


읽기자료 〈담헌서〉
우리 나라는 본래부터 명분을 중히 여겼다. 양반은 아무리 심한 곤란과 굶주림을 받더라도 팔짱 끼고 편하게 앉아 농사를 짓지 않는다. 간혹 실업에 힘써서 몸소 천한 일을 달갑게 여기는 자가 있으면 모두들 나무라고 비웃기를 노예처럼 무시하니, 자연 노는 백성은 많아지고 생산하는 자는 줄어든다. 재물이 어찌 궁하지 않을 수 있으며, 백성이 어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6- 흥선 대원군 과 민씨 세력 (국사 교과서 p108)

19세기 중엽 조선 사회는, 안으로는 세도 정치에 저항하는 민중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고, 밖으로는 일본과 서양 열강이 침략해 오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1863)로 정치적 실권을 잡은 흥선 대원군은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로 외세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조선의 문호 개방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1873년에 고종의 친정으로 흥선 대원군이물러나고 민씨 세력이 정치적 실권을 잡았다.

일본은 한반도 침략을 노리며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어 나라의 문을 열었다(1876). 강화도 조약은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지만, 부산 및 다른 두 곳을 개항해야 했으며, 일본에 치외법권과 해안 측량권 등을 내준 점에서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어서 조선 정부는 미국과 조약(1882)을 맺은 뒤,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서양 열강과도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들 조약 역시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조선 정부는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하였으며, 일본과 청, 미국에 사절단을 보내 신식 문물을 배우게 하였다.

구식 군인, 하층민 등에 의해 임오군란이 일어났다(1882). 이에, 민씨 세력은 청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서울에 들어온 청의 군대는 일시 집권한 흥선 대원군을 청으로 잡아갔고, 3년간 유폐하였다.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는 조선 내정에 대한 간섭과 경제 침략을 강화하였다.

-7- 갑신정변 (국사 교과서 p109-110, p233)

개항 무렵, 일부 양반과 중인 출신 인사들은 개화 세력을 형성하여 사회 개혁을 추구해 나갔다. 이들은 서구의 사회 사상을 받아들여 평등한 근대 사회를 만들려고 하였다. 김옥균, 서재필 등 급진적 개화 세력은 일본의 군사적 지원을 받아 갑신정변을 일으켰다(1884).

갑신정변은 근대 국민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최초의 정치 개혁 운동이었다.이들은 청과의 의례적 사대 관계를 폐지하고, 입헌 군주제적 정치 구조를 지향하였다. 또, 지조법을 실시하고, 호조로 재정을 일원화하였으며, 혜상공국을 폐지하여 자유로운 상업의 발전을 꾀하였다. 또, 문벌을 없애고 능력에 따라 인재를 고루 등용하려 했으며,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선언하는 등 사회의 전반적인 근대화를 추진하고자 하였다.

읽기자료 〈갑신일록〉 갑신정변 때의 14개조 정령의 일부
1. 청에 잡혀간 흥선 대원군을 곧 돌아오게 하며, 종래에 청에 대하여 행하던 조공의 허례를 폐지한다.
2.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리를 세워, 능력에 따라 관리를 임명한다.
3. 지조법을 개혁해 관리의 부정을 막고 백성을 보호하며, 국가 재정을 넉넉하게 한다.
6. 각 도의 환자미를 영구히 받지 않는다.
9. 혜상공국을 혁파한다.
12. 모든 재정은 호조에서 통할한다.
13. 대신과 참찬은 의정부에 모여 정령을 의결하고 반포한다.
14. 의정부, 6조 외의 모든 불필요한 기관을 없앤다.


하지만, 개화파 정권은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갑신정변 이후, 조선 정부는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와 외교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세력 확장에 불안을 느낀 영국은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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