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7] 우리는 그들을 쪽발이라고 부른다 p109

한국인들은 아주 쉽게 일본을 말하곤 한다. 말끝마다 쪽발이 왜놈 하면서 한 수 아래 나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국제 사회의 시각에서 볼 때 일본에 비하면 한국은 작은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제규모 면에서 한국은 일본의 10분의 1에 불과하며, 아마도 정치, 문화, 학문, 예술 등 다른 면에서의 영향력도 이 정도 수준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이 평소 습관처럼 일본을 낮춰 말하는 데에는 아마도 상처받은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 조상들이 일본에 문화를 전해주던 시절도 있었다는데 최근에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모욕과 착취를 당했다는 식의 마음의 상처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일본을 너무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의 역사, 한때 아시아와 태평양의 광대한 지역에 진출해 서양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대제국을 건설했던 영광의 시대, 그리고 패전 후 50년 이상을 주변에서 손가락질 당하면서 전범국가로 지내야만 했던 치욕의 나날들.... 이런 것들을 국외자나 피해자의 입장이 아닌, 일본인의 입장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보지 않은 것이다. 우리도 얼마 전까진 일본을 '우리나라'로 부르고 일본사를 국사, 일본어를 국어라고 했던 적이 있건만 왜 이리도 빨리 멀어져 버린 것일까. 아마도 한국인들은 일본을 비판하고 그들의 약점을 보는 데에만 익숙해진 나머지 일본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예전에 포기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전쟁에 패했을 뿐,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한국은 오랜 세월동안 일본에 대해 반성해라, 사과해라, 그것도 진심에 우러나오는 사죄를 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온 표현은 마지못해 '과거의 일은 유감이다'거나 '잘못되었다', 혹은 ‘피해를 입은 데 대해 사과한다'는 정도였다. 그들은 태평양전쟁과 한반도 지배에 대해 그다지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01년 6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웹 사이트를 통해 '일본은 과거 벌였던 전쟁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가?' 하는 내용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전 세계의 응답자 가운데 60% 이상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답변을 선택했다. 이는 일본에 의한 대동아 전쟁이 유럽 파시즘이 일으킨 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퍼져 있음을 말해준다. 이 설문조사에서 한국인들은 대대적으로 동원되어 YES 클릭하기 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는 한국인들의 시각이 국제적인 감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이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의 2차 대전은 그 성격과 전개방식에서 유럽의 전쟁과 전혀 다른 양상이었고 따라서 다르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미국이 앞장서서 일본을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설득하고 있는 현실은 이미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전범국가로 취급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최근 미국은 일본의 군비증강을 유도해서 중국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을 우려하고 두려워하는 나라는 사실상 남북한뿐이다.

냉철히 생각해 보면 이 지역에서 어느 날 갑자기 깡패국가로 변해 주변국을 침략할만한 우려가 있는 나라는 중국뿐인데도, 한국인들은 일본이 다시 재무장을 한 뒤 한반도를 침략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남북한과 전쟁을 벌일만한 이유도 없고 의지도 없으며 오히려 남북한이나 러시아, 중국 등 주변국들에 의해 일본열도가 공격당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입장이다. 전후 일본은 미국의 안보우산에 무임승차하면서 순조롭게 경제력을 키워왔는데, 냉전이 종료된 지금에 와서 미국은 많은 돈을 들여 일본에 안보우산을 제공해주고 있는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원점부터 그 손익을 재검토하기 시작한 듯하다. 아마도 조만간 일본은 헌법을 수정하고 자위대를 정규 군대로 바꾸어 본격적인 무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나는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보다 존중하고 존경하는 태도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웃 나라에 대해 최소한의 존경심을 갖자는 것은, 그들을 숭배하고 사대하거나 비굴하게 굴자는 뜻이 아니다. 서로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 관계도 잘되기 힘든 법인데 하물며 국가 관계가 어떻게 잘 될 수 있겠는가.

어떤 면에서 보면 일본인들은 좀 불쌍하게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한때 잘나가던 경제는 10년 전 언제부터인가 무너지기 시작해 아직까지 끝도 모를 장기불황이 이어지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이 기간 동안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절반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주식 가격은 절정기의 4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다. 외국인 투자가들도 서서히 발길을 돌려 일본을 떠나는 추세다. 아직 무역수지의 흑자기조는 이어지고 있지만, 일본 경제를 지탱해주던 조선 자동차 전자 산업들도 공장이 해외로 이전되고 채산성이 예전 같지 않아 점차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일본은 남한, 대만 같은 주변국들과 긴밀한 경제협력을 통해 성장의 엔진을 가다듬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또한 수출에 의존한 경제발전 전략을 추진해온 한국과 대만도 나날이 블록화로 치닫는 세계 경제의 추세 속에서 이제는 무역보다는 탄탄하고 규모가 큰 내수 시장의 필요성이 절박한 상황이다. 이처럼 구 일본제국을 이뤘던 3개국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은 앞으로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이룩하는 데 있어 절호의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나는 한국과 일본이 하루빨리 과거사의 망령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관계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북미와 유럽은 이미 대륙을 포괄하는 거대한 블럭을 만들어 단합하고 있는데 동아시아는 분쟁이 끊이지 않으며 서로 헐뜯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을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조그마한 무인도 한두 개를 둘러싼 의견충돌이 영토분쟁으로 발전하고 무력시위까지 동원되는 군사적 긴장 상태로 이어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우리 이웃나라들 사이에 서로를 존경하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일본의 입장을 좀더 그들의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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