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80 미∙소 냉전하의 일본과 세계

5-3 일본의 부흥과 국제 사회  80 미∙소 냉전하의 일본과 세계
[ 냉전의 진행 ]
일본이 독립을 회복하고 부흥에 힘을 기울이는 사이, 미국과 소련 양 진영의 냉전은 격화되어 갔다. 양국은 원자폭탄보다 큰 파괴력을 가진 수소폭탄의 개발에 성공하고, 핵폭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탄(ICBM)을 배치하여 상대국을 직접 파괴할 수 있는 공격력을 갖추었다.

동서로 분단된 독일에서는 1961년 동독 주민들의 서쪽으로의 탈주를 저지하기 위해, 동서 베를린을 가르는 벽을 구축하였다. (베를린장벽) 1962년에는 소련이 미국과 지근거리에 있는 쿠바에 핵미사일기지를 건설하려 했던 것에 의해 미국과 소련 간에 핵전쟁이 일어날 뻔했지만, 미국의 강경한 자세에 소련은 미사일을 철거하였다. (쿠바위기)

1965년 미국은 인도 차이나 반도의 공산주의화를 경계하여 남 베트남을 지지하기 위해 직접 군대를 파견하고, 중국이나 소련이 지원하는 북베트남군과 남베트남의 반정부세력과 싸웠다. (베트남전쟁) 그러나 승리를 거두지 못하고, 1973년 미군은 베트남에서 철수하였다. 2년 후에는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군사력으로 병합하여,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성립되었다.

소련에서는 스탈린의 사후, 1956년에 흐루시초프 제1서기가 스탈린의 정책을 비판하며 사회주의체제의 재건을 꾀하였다. 소련은 쿠바위기 후, 1979년의 아프카니스탄 침공까지의 기간은 서쪽의 긴장완화정책에 동조하면서 군비증강에 전념하였다.

[ 경제 부흥과 일미안보조약 개정 ]
일본에서는 조선특수(朝鮮特需) 이후 장기적인 호경기를 누렸다. 경제는 전쟁[역주: 제2차 세계대전] 전 수준으로 복귀하여, 1956(쇼와 31)년에는 「이제는 전후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1957년에 수상이 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이러한 일본의 부흥을 배경으로 일미안보조약의 개정을 목표로 하여 1960(쇼와 35)년 1월 신조약을 조인하였다. 이에 따라 일미 양국은 보다 대등한 관계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안보조약의 개정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1960년 5월 자민당(*1)이 신안보조약의 국회 승인을 강행 체결하자, 국회 주변을 데모대가 연일 둘러싸는 큰 소란이 일어났다. (안보투쟁) 기시는 신안보조약 성립 후에 사직하였다.
기시 수상의 다음에 수상이 된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는 안보를 둘러싼 대중 소동의 재연을 피하기 위해, 자민당이 결당 시에 내걸었던 자주헌법제정이나 방위력 강화라는 과제에는 손을 대지 않고, 10년 안에 소득을 2배로 올린다는 소득배증정책을 내걸었다.

(*1) 정식 명칭은 자유민주당. 1955년 이래 여당으로서 정권을 담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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