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79 점령 정책의 전환과 독립 회복

5-3 일본의 부흥과 국제 사회  79 점령 정책의 전환과 독립 회복
[ 국제연합과 냉전의 개시 ]
1945년 10월, 연합국은 두 번의 세계대전에 대한 반성에 서서, 새로운 전쟁을 막기 위한 국제 조직으로서 국제연합(국연)을 결성했다. 그러나 전쟁의 싹은 없어지지 않았다. 동유럽을 점령한 소련은 각국 공산당의 활동을 통해 서유럽에까지 공산주의의 영향을 끼치 기 시작했다. 미국은 그 영향력을 봉쇄하기 위해 서유럽에 대규모 경제 원조를 하고, 1949 년에는 소련에 대항하는 군사 동맹으로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했다.

한편 소련도 1949년에는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NATO에 대항해 1955년에 동구 여러 나라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를 결성했다. 독일도 동서로 분단되어, 세계는 미국이 이끄는 자 유주의 진영과 소련이 이끄는 공산주의 진영이 세력을 다투는 냉전 시대에 돌입했다.

중국에서는 일본의 패전 후, 그때까지 항일(抗日)로 손을 잡고 있던 국민당과 공산당이 국공내전(國共內戰)을 재개했다. 1949년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이 승리하여 중 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되었다. 한편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는 대만으로 도망을 갔다. 조선반도에서는 1948년, 남부에 미국이 지지하는 대한민국, 북부에 소련의 영향하에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조선)이 만들어져 대립했다. 이렇게 해서 냉전은 동아시아로 확대되었다.

[ 점령 정책의 전환 ]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일본의 경제 발전을 억제하는 정책을 전환하고,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일본을 발전된 경제력을 갖는 자유주의 진영의 강력한 일원으로 키우는 방침으로 바꾸었다.

1950년 6월, 북조선은 남북 무력 통일을 목표로 소련의 지지하에 갑자기 한국을 침공했다. 한국군과 맥아더가 지휘하는 미군 주체의 국제연합군이 이를 반격했으나 전황은 일진일퇴를 거듭하여, 전쟁은 1953년에 휴전 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조선전쟁, 역주: 한국전쟁) 일본에 주류하는 미군이 조선으로 출동한 후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은 GHQ의 지령에 따라 경찰예비대(*2)를 설치했다. 또한 일본은 미군에 많은 물자를 공급하여 경제 는 활기를 회복하였다.

(*2) 후에 보안대, 이어 자위대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도: 조선전쟁

[ 독립 회복 ]
조선전쟁을 계기로 미국은 기지 존속을 조건으로 일본의 독립을 서두르려고 했다.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에서 강화회의가 열리고 일본은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주의 진영 48개국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었다. 또한 미국과 일미안전보장조약(일미안보조약)을 맺고 미군의 주류를 인정했다.
1952년 4월 28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하여 일본은 독립을 회복했다. (*3)

소련은 구나시리(國後), 에토로후도(擇捉島) 등 북방영토를 일본령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소 간에 평화조약은 체결되지 못하고, 1956년 10월에 일소공동선언으로 전쟁 상태를 종결시킨 후 국교를 회복했다. 이로써 소련의 반대가 없어져, 같은 해 12월 일본은 국제연 합에 가맹하여 국제 사회에 복귀했다.

(*3) 단, 오키나와는 계속해서 미국의 시정(施政)하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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