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76 전시하의 생활

5-2 제2차 세계대전 시대  76 전시하의 생활
[ 국민의 동원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은 전선의 군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활이나 교육, 문화 등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총력전의 시대가 되었다. 일본도 일중전쟁의 발발과 함께 물자, 경제, 산업, 교통 등 모든 것을 정부가 통제하고 운용하는 총동원 체제를 만들었다.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해지자, 국민 생활에서 순면·순모 제품이나 피혁, 고무 제품 등이 모습을 감추어 갔다. 정부는 국민 정신 총동원 운동으로 소비 절약과 저축 증강 등을 호소했다.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 전국(戰局)이 악화되자, 국내의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다.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징용이 행해졌고, 중학교 3학년 이상의 생도와 학생은 근로 동원, 미혼 여성은 여자 정신대로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생은 징병 유예가 취소되어 출정을 하게 되었다. (학도 출진[學徒出陣])

조선반도에서는 일중전쟁 개시 후 일본식 성명을 갖게 하는 창씨개명 등이 이루어졌고, 조선인을 일본인화하는 정책이 강화되고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징병이나 징용이 조선과 대만에도 적용되어, 현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게 되었다. 또한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일본의 광산 등에 끌려와 혹독한 조건하에서 강제로 일을 했다.

물질적으로도 모든 것이 부족하여, 절의 종 등 금속이라는 금속은 모두 전쟁을 위해 공출되었고, 생활 물자는 궁핍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 많은 국민들은 잘 일하고 잘 싸웠다. 그것은 전쟁의 승리를 바란 데서 온 행동이었다.

[ 공습의 피해 ]
전쟁 말기에는 국민이 직접 전화에 노출되었다. 1944(쇼와 19)년 7월 일본의 위임통치령이었던 마리아나 제도의 하나인 사이판섬이 함락되고, 제공권을 쥐게 된 미군은 같은 해 말부터 폭격기 B29로 일본본토 공습을 개시하였다. 아이들은 위험을 피하여 부모 곁을 떠나 지방의 절 등으로 소개(疎開, 역주: 공습, 화재 등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사람이나 건조물을 분산시킴)되었다. (학동소개[學童疎開]) 1945(쇼와 20)년 3월 10일에는 도쿄 대공습이 행해져, 하룻밤에 약 10만 명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4월에 미군은 오키나와 본도(本島)에 상륙하여, 일본군 사망자 약 9만 4천 명, 일반 주민 사망자도 약 9만 4천 명을 내는 전투 끝에 2개월 반 후에 오키나와를 점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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