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75 대동아회의(大東亞會議)와 아시아 나라들

5-2 제2차 세계대전 시대  75 대동아회의(大東亞會議)와 아시아 나라들
[ 아시아로 확대되는 독립에 대한 희망 ]
일본의 서전(緖戰)의 승리는 동남아시아와 인도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꿈과 용기를 키워 주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일본군의 파죽지세와 같은 진격은 현지 사람들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 했다. 일본군의 포로가 된 영국 군대의 인도 병사들 사이에서 인도 국민군이 결성되었고, 그들은 일본군과 협력하여 인도를 향해 진격했다. 인도네시아와 버마에서도 일본군의 지도로 군대가 만들어졌다.

[ 대동아회의 (大東亞會議) ]
일본은 이들 아시아 각 지역에 전쟁에 협력해 줄 것을 요청하고, 아울러 그 결속을 보이기 위해 1943년 11월 도쿄에서 대동아회의를 개최했다. (*1) 회의에서는 연합국의 대서양헌장에 대항하여 대동아공동선언이 발표되었고, 각국의 자주 독립, 상호 제휴에 따른 경제 발전, 인종 차별 철폐를 주장하였다. 이 회의 이후 일본은 구미 세력을 배제한 아시아인에 의한 대동아공영권의 건설을 전쟁 명목으로 명확히 내세우게 되었다.

(*1) 대동아회의 출석국 중 난징(南京) 정부는, 충칭(重慶)의 국민당 정부에 대항하여 만들어진, 일본에게 협조적인 정부를 말함. 또한 1943년 일본은 버마, 필리핀을 독립시키고 자유 인도 임시정부를 승인했다.

[ 아시아 나라들과 일본 ]
이 전쟁은 전쟁터가 된 아시아 모든 지역 사람들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특히 중국의 병사와 민중에게서 일본군의 침공에 의해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일본은 점령한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군정을 실시했다. 현지의 독립 운동 지도자들은 구미 여러 나라로부터 독립을 달성하기 위해 일본 군정에 협력했다.

그러나 일본의 점령 지역에서는 일본어 교육과 신사참배 등을 강요하는 데 대한 반발도 있었다. 연합군과 결합한 항일 게릴라 활동도 일어났고, 일본군은 이에 강력하게 대처하여 일반 시민도 포함한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또한 전쟁 말기가 되어 전국(戰局)이 일본에 불리해지자, 식량이 부족하거나 현지 사람들이 강제로 가혹한 노동에 종사당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났다. (*2)

후에 일본이 패전하고 철퇴한 후, 이들 식민지는 거의 십 수년 사이에 잇달아 자력으로 독립을 달성했다. 일본군 병사 중에는 현지에 남아 독립 전쟁에 참가하는 자도 있었다. 일본의 남방 진출은 원래 자원 획득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시작되고 있던 독립의 움직임을 재촉한 하나의 계기도 되었다.

(*2) 그 때문에 패전 후, 일본은 이들 나라에게 배상을 했다. 그리고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생각도 일본이 전쟁과 아시아 점령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워진 것이라고 비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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