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73 제2차 세계대전

5-2 제2차 세계대전 시대  73 제2차 세계대전
[ 나치스∙독일과 유럽의 전쟁 ]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은 1933년에 나치스당의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을 박해하는 한편 무력에 의한 영토 회복과 확장을 추진하였다.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조약을 맺고나서 1939년 9월 폴란드를 전격적으로 침공하고, 이것을 소련과의 밀약에 의해 두 나라가 분할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1940년 독일군은 서유럽을 침공하고, 파리에 입성하여 프랑스를 항복시켰다.

[ 일∙독∙이 삼국 군사동맹의 실패 ]
 일본은 유럽에서의 독일의 승리에 넋을 잃게 되었다. 1940년 일본은 아시아에 있어서 일본의 입장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이탈리아가 합세한 일∙독∙이 삼국군사동맹을 체결하였다. 그러나 먼 유럽 2개국과의 군사동맹은 실질적인 효용이 없었다. 또한 영국을 지원하는 미국과의 대립을 깊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1941년 4월, 일본은 소련과의 사이에도 일소중립조약을 맺고 두 조약의 압력으로 미국을 양보하게 하려 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이 의도는 파탄 되었다.

[ 경제 봉쇄로 압박당하는 일본 ]
 일본은 석유 수입원를 찾아, 인도네시아를 영유하는 네덜란드와 교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리하여 미국∙영국·중국∙네덜란드 4개국이 일본을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아넣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것은 ABCD 포위망이라 불렸다.

 1941년 4월, 악화된 일미 관계를 타개하기 위한 일미 교섭이 워싱턴에서 시작되었지만, 교섭은 결렬되었다. 7월, 일본 육해군은 사이공(현재의 호치민)에 들어갔다. 이를 남부불인진주(南部佛印進駐)(주 1)라고 한다. 사이공은 일본이 남진하는 데 거점이 될 군사상의 중요 지점이었기 때문에 위기감이 더해진 미국은 곧 재미(在米) 일본 자산의 동결과 대일(對日) 석유 수출의 전면 금지로 보복했다. 8월, 미·영 양국은 대서양상에서 회담을 열고 대서양헌 장을 발표하여 영토 불확대, 국경선 불변경, 민족 자결 등 양국의 전쟁 목적을 널리 알렸다. 일미 교섭은 계속되었지만, 진전은 없었다. 11월, 미국은 일본이 중국∙인도차이나로부터 무 조건 전면 철퇴할 것을 요구하는 강경한 제안(헐[Hull, Cordell] 노트)을 들이댔다. 이것을 최후 통첩으로 받아들인 일본 정부는 최종적으로 대미개전(對米開戰)을 결의했다.

(*1)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말함. 현재의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헐 노트에서 일본에 요구한 항목 (일부 요약)>
3. 일본은 중국 및 인도차이나로부터 군대와 경찰 일체를 철수해야 한다.
4. 일본은 장제스 정부만을 중국의 정통 정부로 인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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