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72 악화되는 일미 관계

5-2 제2차 세계대전 시대  72 악화되는 일미 관계
[ 목적 불명의 수렁에 빠진 전쟁 ]
 중국과의 전쟁이 길어지자, 온 국가를 동원하여 전쟁을 수행하는 체제를 만들기 위해 1938년 국가총동원법이 성립되었다. 이로써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또한 이 시기에는 언론의 통제와 검열 등도 강화되었다.
 중국 대륙에서의 전쟁은 장기화되어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화평공작(和平工作)의 움직임도 있었지만, 전쟁을 계속할 것을 요구하는 군부의 강경한 방침이 끊임없이 우위를 차지했다. 1940년 민정당의 사이토 다카오(齊藤隆夫) 대의사(代議士, 역주: 중의원 의원)는 제국의회에서 「이 전쟁의 목적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지만, 정부는 명확히 답할 수 없었다.

 세계 공황 후 일본 국내에서도 독일이나 소련 같은 국가 체제하에서의 통제 경제를 이상으로 보는 풍조가 확대되었다. 1940년에는 정당이 해산되고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 역주: 1940년 10월 제2차 고노에 내각에서 신체제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결성한 국민 통제 조직)로 통합되었다.

[ 악화되는 일미 관계 ]
 한편 1933년 무렵부터 광대한 식민지를 가지고 있던 영국, 프랑스 등은 본국과 식민지의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고, 그 경제권 내부에서 중요한 상품의 자급자족을 추진하는 한편, 높은 관세를 매겨 권외의 상품을 배척하는 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이것을 블록 경제라고 한다.
 1938년 고노에 후미마로(近衛文麿) 수상은 동아신질서(東亞新秩序) 건설이라는 성명을 내고 일본∙만주∙중국을 통합한 독자적 경제권을 만들 것을 시사했다. 이는 후에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슬로건으로 발전했다.

 미국은 문호 개방, 기회 균등을 주창하며 고노에 성명에 강하게 반발하고, 일본이 독자적 경제권을 만드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중전쟁에서 미국은 표면상 중립을 지키고 있었지만, 이 무렵을 전후해서부터 중국의 장제스를 공공연히 지원하기 시작했다. 일미전쟁에 이 르는 대립의 한 원인은 여기에 있었다.

 1939년 미국은 일미통상항해조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통고해 왔다. 석유를 비롯해 많은 물자를 미국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고 있던 일본은 점차 경제적으로 힘든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일본 육군은 북방의 러시아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북진론(北進論) 사고가 전통적으로 강했으나, 이 무렵부터 동남아시아에 진출하여 석유 등과 같은 자원을 획득하고자 하는 남진론 사고가 강해져 갔다. 그러나 일본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면, 그 곳에 식민지를 갖고 있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와 충돌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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