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63 러시아혁명과 대전의 종결

5-1 제1차 세계대전 시대  63 러시아혁명과 대전의 종결
[ 러시아혁명 ]
길어지는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17년, 러시아혁명이 일어났다. 식량난으로 고통받던 도시 시민의 폭동에 군인이 합류하여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다. 마르크스주의(*1) 이론에 기반하여 국외로 망명해 혁명의 기회를 기다리던 레닌은 이러한 정세를 바로 이용하였다. 무장봉기(武裝蜂起)한 레닌 일파는 노동자와 군인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표자회의(소비에트)를 거점으로 하는 정부를 만들었다. 그후 다른 당파를 무력으로 배제하고 자신이 이끄는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구축하였다.
소비에트 정부는 독일과의 전쟁을 중지하고 혁명에 반대하는 국내세력과의 내전에 몰두하였다. 이 때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 일족과 공산당이 적으로 간주하는 귀족, 지주, 자본가, 성직자, 지식인 등이 다수 처형되었다.

(*1) 독일의 사상가 마르크스가 주창한 주의(主義). 혁명에 의하여 근로자가 자본가를 쓰러 뜨리고 과도기인 사회주의 사회를 거쳐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려는 사상. 단 사 회주의와 공산주의는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 시베리아 출병 ]
오랜 세월 남하하는 러시아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던 일본은 공산주의 혁명세력에 대해서도 미국 이상으로 강한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던 유럽 나라들은 군(軍)을 보내 혁명 저지를 위한 간섭 전쟁을 행하였다.
1918년, 일본은 러시아 영내에 고립된 체코슬로바키아 부대의 구출과 시베 리아에의 영향력 확대를 목적으로, 미국 등과 함께 시베리아로 공동 출병하였다. (*2) 얼마 안있어 미국은 철병하였지만 일본은 1922년까지 공산군과 싸우고 병(兵)을 철수하지 않았다.

(*2) 시베리아 출병에는 포츠머스 조약에 의해 확정된 만주의 이권을 확보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 총력전 ]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을 당시 사람들은 전쟁이 단기간에 끝날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러시아혁명 등을 거치면서 전쟁은 4 년이나 계속되었다. 이 전쟁은 과거의 전쟁 (*3)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각국은 가질 수 있는 힘의 전부를 끌어내어 국민 생활 전체가 전쟁에 말려들었다. 이런 전쟁을 총력전이라고 한다. 과학병기가 발달함에 따라 비행기, 비행선, 전차, 잠수함, 심지어는 독가스 등의 신병기가 이용되고, 참전국의 국민들은 공습에 노출되었다. 국민은 군수공장에 동원되었고 생활필수품이 부족해지는 상황도 발생하였다.

(*3) 그때까지의 전쟁은 나라들 사이의 외교상 수단의 연장이기도 해서, 패배하면 배상금을 지불하고 영토를 빼앗길 뿐, 정부나 국민이 책임을 지게 되는 일은 없었다. 전쟁은 군인이 싸우는 것으로 반드시 모든 국민이 말려드는 것은 아니었다.

[ 대전의 종결 ]
제1차 세계대전은 1918년, 독일 등 삼국동맹 측의 패배로 끝났다. 최대의 전장이 되었던 유럽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총력전의 비참한 현실을 경험하였다. 다수의 국민이 전쟁에 휘말려 들어 서로를 살육한 것은 후에 여러 가지 영향을 미쳤다.
한편 참전했던 일본은 결과적으로 적은 희생으로 전승국이 되는 데 성공하였다. 미국에 있어서도 이 전쟁은 국력의 전부를 기울인 전쟁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분기점으로, 태평양을 사이에 둔 일본과 미국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발언력을 강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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