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61 메이지 문화가 꽃피다

4-4 근대 산업의 발전과 문화의 형성  61 메이지 문화가 꽃피다
[ 대학과 과학 연구 ]
1877(메이지 10)년 도쿄대학이 최초의 종합대학(總合大學)으로서 설립되었다. 민간에서도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 도시샤(同志社), 도쿄전문학교(와세다대학의 전신) 등이 설립되어 많은 인재를 세상에 내보냈다. 대학에서는 무엇보다 서양의 학문을 이상으로 해서 그것을 소화하는데 힘이 기울여졌다.

서양의 학문이 정착됨에 따라 의학이나 물리학, 화학 등의 분야에서 일본인에 의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메이지후기에는 세균학의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나 원자물리학의 나가오카 한타로(長岡半太郞) 등이 세계적인 발견, 발명을 하였다.

[ 새로운 일본의 문학 ]
일본에서 새로운 문학의 출발점이 된 것은 쓰보우치 쇼요(坪內逍遙)의 『소설신수(小說神髓)』로, 그때까지의 도덕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사실을 중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것에 영향을 받아 후타바테이 시메이(二葉亭四迷)는 구어체로 『부운(浮雲)』을 썼다.

일청전쟁 전후에는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을 중시하는 로망주의가 발생하여 시마자키 도손(島崎藤村),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등이 활약하였다. 일노전쟁 무렵에는 인생이나 사회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자연주의 문학이 활발해져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 등이 주목을 받았다.

또한 모리 오가이(森鷗外)는 유럽문학을 소개하고 만년에는 역사소설을 썼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나는 고양이다』『마음(心, 역주: 마음이나 심정이라는 의미)』 등을 써 일본 근대문학의 융성에 큰 역할을 하였다.
사진: 요사노 아키코 도표: 메이지시대의 문학자

[ 예술의 움직임 ]
메이지시대는 한꺼번에 밀려 온 서양의 근대예술을 일본의 예술가들이 필사적으로 흡수한 시대인 동시에, 일본의 전통문화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한 시대이기도 했다.

미술에서는 문명개화 무렵 일본의 낡은 미술이나 불상은 가치가 없다고 하는 구미숭배 풍조가 강해졌다. 그러나 일본미술의 뛰어남에 감동을 받은 도쿄대학의 외국인교사 페놀로사[Fenorosa]가 오카쿠라 덴신(岡倉天心)과 함께 전통예술의 보존과 부흥에 노력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재평가되었다. 덴신 등이 추진한 회화운동(繪畵運動) 하에서 가노 호가이(狩野芳崖) 등은 새로운 일본화의 형태를 모색하였다.

양화(洋畵)에서는 다카하시 유이치(高橋由一)와 아사이 추(淺井忠) 등이 사실적(寫實的)인 유화를 그리려고 하였다. 프랑스에서 회화를 배우고 귀국한 구로다 세이키(黑田淸輝)는 밝은 빛이 넘쳐나는 작품을 그렸다. 그리고 조각에서는 사실적인 목조(木彫)를 제작한 다카무라 고운(高村光雲) 등이 활약하였다.

음악에서는 양악의 수입에 의해 서양 가요를 바탕으로 한 창가(唱歌)가 소학교 교육에 도입되어 국민들 사이에서 사랑을 받게 되었다. 특히 다키 렌타로(瀧廉太郞)는 「황성의 달」이나 「꽃」 등을 작곡해서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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