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60 근대 산업의 발전

4-4 근대 산업의 발전과 문화의 형성  60 근대 산업의 발전
[ 일본의 산업혁명 ]
정부는 메이지 초년부터 식산흥업에 힘써, 관영사업은 서양 산업의 모범을 민간에게 제시하는 역할을 하였다. 1880년대에 들어서자, 정부는 일본은행을 설립하여 금융제도를 정비하고 관영공장을 불하하여 경제 발전을 민간의 손에 맡겨 나갔다. 기계를 갖춘 공장에서 대량생산하게 된 면사, 생사, 면직물은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이러한 수출에 의해 얻은 대금으로, 면화 등의 원료와 군함, 철강, 기계 등이 수입되었다.

시모노세키조약에 따른 배상금은 중공업에 투자되어, 1901(메이지 34)년에 관영의 야하타(八幡)제철소가 개업하여 철강의 국내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와 동반하여 조선업도 발전을 이루어, 일노전쟁 후에는 1만 톤 이상의 조선도 가능해졌다.

이러한 변화는 일본의 산업혁명으로 평가되고 있다. 메이지시대에 근대산업이 발전한 요인의 하나로, 에도시대 이래의 민중의 높은 교육수준과 근면 정신이 있었다. 또한 사민 평등에 의해 사람들 사이에 자신의 노력과 계획으로 인생을 열어 가려는 정신이 자라나,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와 같은 유능한 실업가가 다수 등장하였다.

[ 변화하는 도시와 농촌의 생활 ]
산업발전을 떠받친 것은 근대적인 교통망의 확충이었다. 1889(메이지 22)년에는 도카이도선(東海道線)의 신바시(新橋)∙고베(神戶) 간이 전선개통(全線開通)되어 전국의 철도망이 확대되어 갔다. 또한 마차 등의 통행이 가능하도록 도로도 정비되어 갔다. 지방의 도시나 농촌에도 철도가 통하여, 그때까지의 가도(街道) 연변을 대신해서 역주변이 새롭게 발전하였다.

근대산업의 발전과 교통망의 정비로 직업이나 사업의 선택 폭이 넗어졌다. 농촌에서도 다양한 부업이 시도되고,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미식(米食)이 보급되고 인구도 착실히 증가해 갔다. 자녀를 제사공장의 여공으로 돈을 벌러 내보내거나, 도시에 이주해서 공장 노동자가 되는 사람들도 다수 나오게 되었다.

도쿄 등의 대도시에서는 유리가 보급되어 쇼윈도우가 늘어 서고, 민가에서도 유리 장지가 이용되게 되었다. 또한 길거리에 시계탑이 설치되어 정확한 시각에 맞추어 생활하는 습관이 확산되고 공장 등에서도 시간 단위로 노동이 계산되게 되었다.

[ 사회 문제의 발생 ]
근대산업의 발전과 함께 공장근로자의 저임금과 장시간 근로가 문제가 되었다. 일청전쟁 후에는 노동조합운동도 시작되었다. 1891(메이지 24)년에는 아시오동산(足尾銅山)의 광독(鑛毒) 문제가 발생하였는데, 1901년에 다나카 쇼조(田中正造)는 이를 천황에게 직소하려고 해서 널리 주목을 받았다. 급속한 근대산업 발전의 그늘에는 새롭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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