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59 세계 열강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

4-3 입헌 국가(立憲國家)의 출발  59 세계 열강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
[ 일본 국가의 새로운 과제 ]
일청∙일노의 두 전쟁에서의 승리에 의해, 일본은 구미열강의 압력 하에서 독립을 유지한다고 하는 막부 말 이래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일본의 국제적 지위는 향상되어 세계 열강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근대일본의 건설은 이에 완성을 보았다.

그러나 국제적 지위의 향상은 일본국가(日本國家)에 있어서 무거운 시련이 부과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일본은 유일한 유색 인종의 대국으로서 구미 열강으로부터 경계의 시선 을 받게 되었다.

[ 한국병합(韓國倂合) ]
일노전쟁 후, 일본은 한국에 한국통감부를 두고 지배를 강화해 갔다. 구미 열강은 영국의 인도, 미국의 필리핀, 러시아의 외몽고 등 자국의 식민지나 세력권 지배를 일본이 인정하는 대신 일본이 한국을 영향하에 두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해 한국의 병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10(메이지 43)년 일본은 무력을 배경으로 한국 내의 반대를 억누르고 병합을 단행했다. (한국병합)

한국 국내에는 민족이 독립을 잃는 것에 대해 격렬한 저항이 일어났고, 그 후에도 독립 회복 운동이 끈질기게 이루어졌다.

한국병합 후 설치된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철도와 관개 시설을 정비하는 등의 개발을 했고 토지 조사를 개시했다. 그러나 이 토지 조사 사업에 의해 그 때까지의 경작지에서 쫓겨난 농민도 적지 않았으며, 또한 일본어 교육 등 동화(同化) 정책이 추진되었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반감은 고조되었다.

[ 중화민국의 성립 ]
일본은 일청전쟁 후 영토가 된 대만에서도, 주민의 저항을 억누르고 대만총독부를 두어 현지 개발을 했다. 한편 청나라로부터는 일청전쟁 후 일본의 근대화를 배우기 위해 많은 유학생이 찾아왔다. 쑨원(孫文)은 1905년 도쿄에서 유학생을 중심으로 중국동맹회를 결성해, 삼민주의(三民主義) (*1)를 내걸고 청조를 타도하려는 운동을 개시했다.

1911년 민중의 반정부 운동과 군의 반란이 연계되어 많은 성(省)이 청조로부터 독립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을 신해혁명(辛亥革命)이라 한다. 같은 해 난징(南京)에 혁명파 대표들이 모여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선출하고, 다음해 중화민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청조 정부의 실력자였던 위안스카이(袁世凱)는 혁명파와 힘을 합쳐 황제를 퇴위시키고 청조를 멸망시켰으며, 그 대신 쑨원으로부터 대총통의 지위를 양도받았다. 그러나 대총통에 취임한 위안스카이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혁명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그 후 중국은 통일성을 잃고 무력을 지니는 지방 정권인 크고 작은 군벌이 각 지방을 제각기 지배하게 되었다.

(*1) 민족의 독립, 민권의 신장, 민생의 안정이라는 세 가지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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