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910년 8월 29일 '아무 일 없는 것 같았다'는 국치일 [한국일보]

 Category : 【 전재 기사 】 Tag :
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 순종황제가 참석한 형식적인 어전회의에서 총리대신 이완용은 조선과 일본의 병합안을 가결시켰다. 일제는 이 사실을 1주일이나 극비에 부쳤다가 8월 29일에야 순종황제의 옥새를 날인케 하고 병합조약을 포고했다.

경술년에 일어난 치욕이라 하여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한다. 97년 전의 일이다. 이 기막힌 소식을 듣고 금산군수 홍범식은 뒷산에 올라가 목을 매 자결하였고 매천 황현은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음독, 순국하였다. 그 뒤로도 수많은 우국지사들이 자결의 길을 택하였다. 여태까지 교과서에서 그렇게만 배웠다.

그래서 당시 당연히 모든 한국인들이 비통해 하면서 괴로워했을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3·1 만세 의거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가 나중에 변절한 최린(崔麟)은, 한일합방이 공포된 그날 종로거리의 조선인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흥청거리며 장사를 하고 먹고 마시는 '일상'을 잃지 않았다고 했다.

이걸 믿기 어려웠던 어느 역사 연구자는 "얼른 이해가 안 된다"며 "어쩌면 이 날은 29일이 아니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비밀리에 조약이 체결된 22일의 풍경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최린의 기록을 뒷받침하는 주장이 자꾸 나온다. 중국 지식인 양계초는 1910년 9월에 쓴 글에서 합병조약 발표를 둘러싸고 주변국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눈물을 참지 못하는데, 조선인들은 흥겨워하며 고위관리들은 날마다 새로운 시대의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고자 분주하고 기뻐하기만 하였다고 주장했다.

믿기 어려운 말이다. 다만 당시 한국인들이 '일상'을 잃지 않았다는 건 수긍해야 할 것 같다. 실제로 8월 29일 그 날은 의외로 조용했으며, 반대 시위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출전 : '아무 일 없는 것 같았다'는 국치일 [한국일보] 강준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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