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47 삿초동맹(薩長同盟)과 막부의 멸망

4-1절 구미의 진출과 막부 말의 위기  47 삿초동맹(薩長同盟)과 막부의 멸망
[ 삿초동맹과 도막운동 (倒幕運動) ]
1863년 막부는 조정으로부터 조슈번 세력과 이들과 연결한 양이파 구게(公家)를 추방하고, 도쿠가와와 사쓰마(가고시마현), 아이즈(후쿠시마현) 등의 유력한 번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도체제를 만들었다. 나아가 다음해에 막부는 각번을 지휘해서 조슈번을 공격하고, 이를 항복시켰다. (조슈정벌) 그러나 조슈번에서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가 막부에 굴복한 번 정부에 반란을 일으켜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등과 함께 번의 주도권을 무력으로 탈환함으로써, 조슈번은 다시 막부를 비판하는 입장으로 전환하였다.

한편 사쓰마번에서도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등이 번정(藩政)의 실권을 쥐고, 사쓰에이전쟁(薩英戰爭)의 경험으로부터 양이를 포기하고 군비 강화에 노력하였다. 또한 조슈번을 교토에서 추방하여 세력을 회복한 막부와 대결하는 자세를 강화시켜 나갔다.

1866년, 도사번(고치현) 출신인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외국에 대항 할 수 있는 강력한 통일국가를 만들 필요성을 주창하여, 그때까지 반목하고 있던 사쓰마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와 조슈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를 중재하여 삿초동맹 (薩長同盟)을 맺고, 두 번(藩)이 제휴하여 도막을 목표로 할 것을 밀약시켰다. 이렇게 하여 존왕양이운동은 도막(倒幕)운동으로 변화하여 갔다.

[ 도쿠가와 막부(德川幕府)의 멸망 ]
1866년 선대의 쇼군(將軍)이 서거한 뒤,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제15대 쇼군이 되었다. 조정에서는 막부에 호의적이던 고메이 천왕(孝明天皇)이 서거하고 14세의 메이지 천왕(明治天皇)이 즉위하여, 조정 내부에서는 도막파가 우세해졌다.

1867년 10월, 요시노부(慶喜)는 도쿠가와가(德川家)가 막부라는 형태로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 이미 불가능하다고 삼아,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의 지위를 조정에 반환하였다.(*1) 이것을 다이세이 봉환(大政奉還)이라고 한다. 요시노부는 천황 밑에 다이묘들이 모이는 의회를 만들어, 이중에서 최대의 다이묘인 도쿠가와가가 실질적인 지배를 계속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요시노부의 의도를 간파한 사쓰마번의 사이고 다카모리나 오쿠보 도시미치는 구게(公家)인 이와쿠라 도모미(岩倉具視)나 조슈번의 기도 다카요시 등과 연결하여, 조정(朝廷)이 요시노부의 추방과 영지 몰수를 하도록 기획하였다.

그 결과 1867년 말 조정은 왕정복고(王政復古)의 대호령을 발하여, 고대건국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 가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정부를 조직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렇게 하여 약260년간에 걸친 도쿠가와막부는 멸망하였다. 이는 무사가 정권을 잡았던 시대의 종말이기도 하였다.

(*1) 정이대장군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 이래 무가(武家)의 수장을 지칭하며, 도쿠 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임명된 이후에는 도쿠가와가(德川家)가 대대로 세습하였다. 이를 반환하는 것은 정권의 반환을 의미한다.

<도쿠가와 막부에서 메이지 정부로의 전환>
페리가 내항하여 개국을 요구한 지 불과 15년 후에 도쿠가와 막부는 멸망하였다. 조선의 이조(李朝, 역주: 이씨 왕조)는 구미열강이 밀어 닥친 후에도 44년이나 계속되었고, 청조는 72년간이나 무너지지 않았다. 이들과 비교해 보면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대단히 짧은 기간에 사쓰마번과 조슈번 등의 세력에 의해 쓰러진 것이 된다. 이것은 어째서일까.

이조나 청조에서는 시험제도(試驗制度, 역주: 과거)를 통해 전국의 우수한 인재가 중앙으로 모아졌다. 황제나 국왕이 강대한 힘을 가진 반면, 지방의 대항세력은 약했다. 이에 반해 일본에서는 각지의 번에서 많은 인재가 양성되었다. 이는 후에 막부를 쓰러뜨리는 강한 원동력이 되었다.

또한 일본에는 황실(皇室)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전국의 무사는 최종적으로 천황을 섬기는 입장에 있었다. 황실은 정치의 실권은 없었지만, 권위의 상징으로서 계속적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열강의 압력이 강해지자 막부의 권위는 쇠퇴하였지만, 막부를 대신하여 다시 황실을 일본 통합의 중심으로 함으로써, 정권의 이동이 단기간에 무리없이 이루어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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