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기초와 성격  1.문제제기

1897년에 성립한 大韓帝國(대한제국)이 어떠한 성격의 나라인지를 둘러싸고서는 지금까지 몇 차례 논쟁이 있었다.(*2) 한편의 연구자들은 대한제국의 皇帝(황제)가 추구한 정책과 정치행태를 植民地化(식민지화)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近代的(근대적) 改革(개혁)으로 평가하였다. 다른 한편의 연구자들은 대한제국의 여러 정책에서 근대적 개혁의 요건을 찾기 힘들다고 반론하였다. 이 논쟁이 얼마만큼이나 생산적이었는지는 회의적이다. 논쟁이 전제했던 사실인식의 토대가, 특히 대한제국의 정책을 근대적 개혁으로 평가한 연구자들이 제시했던 실증적 근거가 불충분하고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논쟁은 대한제국기에 팽창한 皇室財政(황실재정)의 지향이 무엇이었는지를 주요 논점으로 하였다. 황실재정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는 정부가 황실을 받들기 위해 정부예산의 일환으로 지원한 宮內府(궁내부)의 재정, 둘째는 황실이 별도의 재원을 공식적으로 확보하여 운영한 궁내부 산하 內藏院(내장원)의 재정, 셋째는 오래 전부터 있어온 宮房(궁방)의 재정이다. 지금까지 황실재정에 관한 연구는 주로 궁내부와 내장원의 재정을 대상으로 하였다. 특히 내장원재정의 실태가 실증적으로 세밀하게 밝혀졌다(金允嬉 1995; 李潤相 1996a, 1996b; 金載昊 1997, 2000). 그렇지만 황실재정의 다른 한 축인 궁방재정의 실태가 거의 밝혀지지 않아 황실재정의 전모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다.

지금까지 궁방재정에 관한 연구가 방치된 데에는 그것이 전 황실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으리라는 전제가 있었다고 보이지만, 과연 그러했는지는 검토의 과제라고 하겠다. 궁방재정의 규모가 작지 않았다면, 오히려 궁내부와 내장원 재정보다 컸다면, 지금까지 그 두 재정에 관한 분석만으로 내려진 몇 가지 결론에 수정이 가해질 수도 있다. 또한 궁방재정에 관한 연구는 구래 조선왕조 王室財政(왕실재정)과의 관련이라는 시각에서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역사적 위상을 분명히 해 줄 수도 있다. 황실재정은 구래 왕실재정의 특질과 경향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많이 지적되어 온대로 대한제국의 황제는 典圜局(전환국)을 자신의 직속기구로 장악하였다. 대한제국의 황제는 전환국이 발행한 다량의 화폐를 자신의 의지와 필요에 따라 유통시켰는데, 그것은 황실재정의 운영과 깊은 연관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전환국 화폐의 유통 경로나 그것의 황실재정과의 연관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았다. 자료의 부족이 큰 원인이었다. 기존 연구의 그러한 문제점도 궁방재정에 관한 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보완되리라 기대된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은 明禮宮(명례궁)이란 궁방의 여러 재정기록을 분석하고자 한다. 우선 1793-1894년에 걸친 동 궁방의 주요 수입원과 지출용도의 추이를 소개한다. 연후에 대한제국기의 동향을 이전 시대와의 연속 또는 단절의 관점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황실재정의 다른 한 축을 이룬 내장원 및 전환국과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할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기 황실재정의 역사적 특질에 대해 여전히 불명확한 점을 많이 남기긴 하지만 어느 정도 뚜렷하게 윤곽을 잡고 싶은 것이 이 논문의 바램이다.

명례궁은 1906년 도합 15개였던(和田一郞 1921: 504-5) 궁방 중의 하나이다. 이에 명례궁이 전 궁방 가운데 큰 편에 속하기 했지만 그에 대한 분석만으로 궁방재정의 전모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본 논문의 이 같은 문제점은 추후 전 궁방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대규모 연구를 통해 검증되고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출처 : 大韓帝國期 皇室財政의 기초와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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