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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시대의 경제성장 [차명수 영남대 교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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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기 경제성장은 한국 경제사에서 어떤 위치를 갖는 것일까? 장하준(2005)은Angus Maddison의 역사통계를 인용하면서, 식민지기의 1인당 생산 증가속도가 연 2%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해방 후 고도성장기 남한의 연 6% 이상의 경제성장에 비하면 매우초라한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1960-1970년대는 거의 모든 나라가 어느 때보다도빠른 성장을 누리고 있던‘자본주의의 황금기’였을 뿐 아니라, 그 중에서도 한국의 경제성장은 예외적으로 빠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는 제대로 된 비교가 아니다. 학문적이고객관적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식민지기의 경제성장을 식민지가 되기 전 한국의 경제성장실적과도 비교해 보아야 하고, 또 20세기 초반의 다른 나라의 경제성장과도 비교해 보아야 한다. Maddison(2001: 265, 304, 330)에 의하면, 1913-50년 세계 전체의 1인당 생산 증가율은 한국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연 0.91%에 불과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서의 1인당 생산은 연 0.02%의 속도로 하락했다. Maddison(2001)을믿는다면 지난 20세기 후반에 남한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룩한 나라의 하나였던 것처럼, 세계 대공황이 휩쓸고 지나간 20세기 전반에 식민지 조선은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고도성장을 이룩한 지역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또 앞서 지적한 것처럼, 20세기 초에진행된 근대적 경제성장은 이전에는 한국 역사에서 한번도 관찰된 적이 없는 대사건이었다.

그러면 우선 조선 후기에서 오늘날까지에 이르는 한국 경제사 속에서 식민지기 경제성장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런 비교평가를 할 때 흔히 인용되는 것이 Maddison(1995: 204, 205)의 1911-92년의 식민지 조선과 남한의 1인당생산통계이다. 그러나 이 장기 시계열 중 식민지기에 관한 수치는 특히 신뢰하기 어렵다.따라서 이를 근거로 식민지기의 경제성장을 평가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신뢰하기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우선 1911-38년의 1인당 생산은 溝口(1988)의 추계를 근거로 한 것인데, 그 추계는 (제12장에서 지적했듯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둘째,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 이후부터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까지는 전쟁과혼란 속에서 통계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조사된 통계도 대부분 소실되었다. Maddison(1995)이 제시한 이 통계 암흑기의 1인당 생산은 단편적 수량 데이터를 바탕으로 도출한 것으로 추계(estimate)라기보다는“guestimate”혹은“통제된 추측(controlled conjecture)”에 불과하다. 셋째, Maddison은 1911-38년의 1인당생산을 backward projection을 통해 1990년의 국제 평균가격(Geary-Kharmis dollar)으로 표시했는데, 한 세기에 가까운 장기간에 걸쳐 backward projection을 하는 경우 교역조건의 변화와 산업구조의 변화에 기인한 바이어스가 발생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Maddison(1995)에 따르면, Geary-Kharmis 달러로 환산했을 때 1인당 생산은 식민지 타이완보다 조선에서 더 높은데, 袁堂軍∙深尾京司∙馬德斌(2003)이 계산한 두 지역의 물가지수를 이용해 두 지역의 명목 1인당 생산을 각각 나누어 보면 타이완의 생활수준이 현저히 높다. 이는 backward projection에 따른 바이어스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말해주는사실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backward projection이 아니라) 1940-53년 물가 데이터를 근거로식민지 조선과 1953년 이후 남한의 1인당 생산을 비교하겠다. 그리고 1941-52년은 충분한 자료가 없으므로 무리한 추계는 시도하지 않겠다.

조선은행(1950년 한국은행으로 개명)은 해방 후에도 계속 1936년부터 연결되는 물가시계열을 작성하고『경제연감』등에 발표했다. 이에 의하면, 1936년에 비해 1953년에는도매물가 수준이 23,925배, 소매물가 수준이 30,220배, 명목임금 수준이 23,731배가 되었다. 도매물가와 소매물가 증가율의 이런 차이가 생겨난 것은 소매물가에는 중간투입재가격이 포함되어 있지 않고 최종소비재 가격만 반영되어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기간 동안의 가격 통제와 전후 통제 해제에 따른 급속한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소매보다는 도매물가지수가 GDP 디플레이터에 가깝지만, 도매물가지수에는 서비스상품 가격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서비스산업은 매우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므로 서비스 가격은 명목임금의 추이를 따라 변동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명목임금 변화율은 도매물가 변화율과 비슷하므로 여기서는 도매물가지수를 디플레이터로 사용해서 1953년 이후의 1인당 생산을 1935년 가격으로 변환했다.다음으로 이렇게 도출된 1953-59년 평균 1인당 소득과 (1990년 미국 달러로 표시된)Maddison(2001)의 1953-59년 평균 1인당 소득 사이의 비율을 적용해서 1935년 㞛으로표시된 1인당 소득을 1990년 미국 달러로 환산했다.

그림 13-3은 이렇게 계산한 1911-2003년의 1인당 생산의 추이를 보여준다. 여기서우선 눈에 띄는 것은 1953년 남한의 1인당 소득은 1940년에 비해 30% 정도 하락해서1920년대 중엽의 수준으로 되돌아 갔다는 사실이다. Angus Maddison의 숫자도 해방 후남한의 1인당 소득이 해방 전에 비해 하락했음을 보여 주는데, 장하준(2005)과 허수열(2005)은 이것이 식민지기의 경제성장이 일본인 없이는 지속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1인당 소득이 감소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펼 수는 없다.왜냐하면 1941-52년에는 해방뿐 아니라 남북분단, 한국전쟁과 같은 커다란 정치적 충격이 발생했고, 이것이 생활수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기간 동안의1인당 생산을 추계할 수 없고, 따라서 생활수준 하락이 언제 왜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기어렵기 때문이다. 설령 Maddison의 숫자가 보이는 것처럼 대부분의 하락이 일본인이 돌아가 버린 1945년에 발생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식민지기 경제성장이 일본인들만을 위한것임을 증명하지 않는다. 1945년에는 해방뿐 아니라 남북분단도 일어났기 때문이다. 분단으로 지역간 분업 관련이 단절되었는데, 이것이 생산을 위축시켰을 것이다. 또 1944년이전의 1인당 생산은 남북 전체에 관한 것이고, 1945년 이후의 1인당 생산은 남한만에관한 것이므로 이 둘은 직접 비교 가능한 숫자가 아니다. 1930년대 공업화가 주로 북한지역에서 일어나면서 북한의 1인당 생산이 남한보다 높아졌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해방 후 북한으로부터 남한으로의 인구유출로 두 지역 사이의 1인당 생산 갭은 더 커졌을것이다.

그림 13-3에 의하면, 남한에서 식민지 시대 말기의 생활수준이 회복되는 것은 1960년대 중엽이 되어서이다. 이후 남한에서는 고도성장이 일어나 1998년에는 1911년에 비해19배 정도의 1인당 소득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반면, 북한의 1인당 생산은 식민지기말기의 수준에서 한동안 정체하다가 1990대 들어 급격히 하락해서 오늘날 1930년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1911년의 1인당 생산추계를 이용해서 조선 후기의 1인당 생산수준이 어느 정도였을지추측해 볼 수 있다. 최근의 여러 연구들은 19세기에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떨어졌으며,20세기 들어와 생활수준이 향상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그 연구들에 따르면, 1900년에는 1800년에 비해 마지기당 지주가 거둬 들인 소작료의 양이 반 이하의 수준으로 하락했으며, 농업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감소했다. 이러한 각 계층의 소득감소는 1800년경의 1인당 생산 수준이 1911년보다 높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의미한다. 19세기의 경제후퇴 속도를 아주 느리게 잡아서 만일 1800년의1인당 생산이 1910년의 2배라고 한다면, 1800년의 1인당 생산은 1960년대 중엽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 된다.

이번에는 식민지의 1인당 생산 수준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았을 때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으며, 또 1인당 생산 증가속도는 얼마나 빠른 것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우선1911-38년의 한국 1인당 생산은 1990년 미국 물가로 평균 893달러였다. 이는 1998년방글라데시의 835달러, 아이티의 816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의 1인당 생산은1911년 626달러였는데 1998년에는 12,152달러가 되어 한 세기 동안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림 13-4는 1911-2004년 한국의 1인당 생산과 미국 및 일본의 1인당 생산의 비율이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보여준다. 우선 식민지 지배가 시작될 당시 한국의 평균적 생활수준은 일본의 절반도 되지 못했고 미국 생활수준의 10분의 1을 좀 넘는 정도였다. 식민지기에 한국의 1인당 생산 증가속도는 일본에 비해 느렸고, 그래서 한국의 1인당 생산의 일본의 1인당 생산에 대한 비율은 서서히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식민지기 조선의 1인당 생산 증가속도는 미국에 비해서 빨랐고, 그래서 두 나라 사이의 생활수준 격차는 서서히 좁혀져 갔다. 한국전쟁을 거친 뒤 한국와 일본 및 미국 사이의 생활수준은 다시 크게벌어졌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의 생활수준 격차는 매우 빠른 속도로 좁아져 오늘날 남한은 미국의 약 절반 정도의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다. 해방 후 일본과의 격차는 계속 벌어져 1970년경 5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으나, 이후 좁아져서 현재 남한의 1인당 생산은 일본의 3분의 2에 도달해 있다. 이런 소득수준의 수렴과 발산의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흥미로운 탐구과제로 남아 있다.
출처 :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5> 제13장 경제성장∙소득분배∙구조변화 [차명수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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