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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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며, 제주도-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 한국 대표단은 여기에 독도를 넣을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Category : 【 독도 】 Tag :
한국도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담에 승전국으로 참여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후 독립한 국가"로 간주되어 참여를 거부당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아무 역할도 없었던 나라라는 것이다.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 회담에는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중화민국도 중화인민공화국도 초청받지 못했다.

미국이 준비한 대일 강화 조약 문안 중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며, 제주도-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하는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제2조 a항) 는 내용이 있었다. 주미 대사 양유찬이 이끌었던 한국 대표단은 여기에 쓰시마(대마도)까지 보탤 것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이번에는 독도와 파랑도를 넣을 것을 다시 요구했다가 또 거절당했다.

미국이 한국의 두 번째 요구를 거절한 것은 두 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요구를 제출했던 일등서기관 한표욱은 위치의 질문에 "일본해에 위치해 있으며, 대체적으로 울릉도 인근에 위치하는 것으로 믿는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Mr Han stated that these were two small islands lying in the Sea of Japan, he believed in the general vicinity of Ullungdo.)

독도의 위치는 '리앙쿠르 바위' 또는 '다케시마'란 이름만 댔으면 바로 확인됐을 것이다. 그런데 전설의 섬 파랑도와 함께 "그 근처 어디 있을 겁니다" 요구하는 쪽에서 이처럼 무성의하게 대답하는데 요구받는 쪽에서 알뜰히 찾아줄 리가 없다. 독도 표시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은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좋은 빌미가 되었다.


정병준은 <독도 1947>(돌베개 펴냄)에서 이런 경위를 밝힌 다음 762~763쪽에 이런 논평을 붙였다.

한국 정부가 최초로 독도를 거론한 제2차 답신서(1951년 7월 19일)에는 독도의 명칭만이 거론되었을 뿐 독도-파랑도에 대한 어떠한 근거-관련 자료도 제시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조약 초안에 거론된, 일본이 방기할 도서인 제주도-거문도-울릉도 뒤에 단지 독도-파랑도를 첨부했을 뿐이다. 추가적인 설명은 전무했다. 또한 위치와 존재가 확인되지 않던 파랑도와 함께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주장됨으로써 독도 자체의 실존감이나 신뢰도를 저감시켰다.

나아가 한미 협의의 맥락에서 보자면 대마도 반환 요청이 기각된 다음에 독도 반환을 주장했고, 그것도 가공의 섬인 파랑도와 함께 요청함으로써, 독도가 한국 측 영유권의 중요성에서 후순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한미 협의(1951년 7월 19일) 시점에 한표욱 1등서기관은 독도와 파랑도가 "대체적으로 울릉도 인근에 위치"한다고 발언함으로써 지리적-역사적-문헌적 정보가 부정확하고 미비했음을 드러냈다.

또한 한국 정부는 정치적 주장이었던 대마도 반환 요청이 기각된 이후 영토 문제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했다. 파랑도를 주장한 데서 드러나듯이 정부 스스로 명확한 확증근거를 갖지 못한 지역을 한번 주장해보자는 정도의 결의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영토인 독도의 불가침성에 대한 진지한 대응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리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하는 일본인들의 주장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단편적으로 제시되는 일부 근거만 보면 독도가 일본 땅인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1951년 7월 한미 간의 협의 내용도 그런 근거의 하나다.

그런 근거가 한국에서 일체 무시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의 문제다. 각자 주장하고 싶은 방향에 불리한 증거와 유리한 증거를 함께 검토해서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영원한 평행선을 면할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지 않는 주장을 한다고 미워하기만 하기보다 설득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불리한 증거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원문 : "독도는 일본 땅" 근거는 이승만이 제공했다! 김기협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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