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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Ⅵ. 맺음말  「한국사회 갈등의 역사적 배경」

한국사회 갈등의 역사적 배경」 Ⅵ 맺음말  (시대정신 2011년 여름호)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갈등의 악성구조는 그에 상응하는 깊은 역사적 인과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 한국인들을 가장 심각하게 분열시키고 있는 지역감정은 60년대 이후 특정 지역 출신의 정치세력이 장기간 집권하는 과정에서 생겼다기보다 고려ㆍ조선왕조의 천년에 걸친 지역차별 정책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역대의 왕조는 그에 속한 지역과 신민을 지배함에 있어서 정치적으로 잘 단합된 공동체의식을 배양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초월적인 정치철학과 통합적인 사회윤리를 역대의 왕조는 결여하였다.

한국의 전통사회는 높은 신뢰의 공동체사회라기보다 낮은 신뢰의 대중사회로서의 특질을 지녔다. 지연이나 직능에 바탕을 둔 영속하는 인격으로서 단체 또는 공동체는 결여된 편이었다. 인간의 사회적 생존에 불가결한 규범, 질서, 공공기능은 이해의 직접적 당사자의 결사인 계에 의해 공급되었는데, 그것은 그 목적 기능에 따라 다양한 공간적 범위와 신분적 층위에서 분산적으로 또 중층적으로 맺어졌다.

19세기까지의 전통사회를 통합한 조선성리학에서 인간 욕망의 자연성과 그에 바탕을 둔 자립적 개체로서 사(私)의 범주는 끝내 승인되지 않았다. 인간들은 성리학의 윤리에 따라 상하 위계의 질서로 통합되었다. 가장 강인한 통합의 단위는 효의 윤리에 바탕을 둔 친족집단으로서 가문이었다. 개별 가문을 고차의 정치로 통합하는 충의 윤리는 강력하지 못했으며 자주 효의 윤리에 압도되었다.

이 같은 분산적 구조의 전통사회는 일제의 지배기를 거치면서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관료제국가로 재편성되었다. 국가는 사회를 통합하고 지배하는 유일하고 초월적인 권위로 군림하였다. 사회에서 관찰되는 자치기능은 상장례의 상호부조를 위한 족계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를 넘어서는 사회의 영역에서 인간들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익명과 불신으로 대립하였다. 이 같은 국가와 사회의 존재형태는 그대로 해방 후의 대한민국으로 계승되었다. 사회를 통합하는, 무연(無緣)의 인간들을 빨아올리는, 유일한 권위로서 중앙권력이 건국, 전쟁, 조국근대화와 같은 정당하고 강력한 공의 권위로 장악되었던 60-70년대까지 사회가 분열하고 갈등할 여지는 그리 없었다. 그 사이 한국인들을 새롭게 통합한 정치철학의 범주는 국민이었다. 19세기말에 도입된 자유민권사상이 독립운동을 통해 발전하고 해방 후 공산주의와 치열하게 투쟁한 결과로 쟁취한 것이 1948년 제헌헌법이 선포한 국민의 범주였다.

오늘날과 같이 한국의 정치와 사회가 갈등의 악성구조로 변질되기 시작하는 것은 80년대 이후 민주화시대를 경과하면서부터이다. 크게 보면 민주주의 정치제도가 그의 향유자들에게 청구하는 마땅한 비용이었다. 그런데 비용이 지불된 결과는 민주주의의 순기능으로서 통합의 고양이 아니라 분열의 증폭이었다. 그러한 갈등의 악성구조가 성립한 것은 국민이란 최고 수준의 범주가 민족이란 또 하나의 거대 범주에 의해 짓눌리고 해체되었기 때문이다. 80년대 이후 통일운동을 견인한 민족이란 감성적 범주는 그 거대한 정치적 동원력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을 보다 높은 수준의 문명으로 이끌 보편적 원리를 결여하였다. 2000년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을 선포한 남북정상회담은 민족 범주가 국민 범주를 압도하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래 한국인을 하나의 질서로 통합해 온 국민 범주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하고 그 자리에 갈등의 악성 구조가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이상이 이 글의 내용이다. 이후 지난 10년간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사족을 붙이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2002년의 대선 과정에서 모당의 대선 후보가 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때 필자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수도 이전이라는 그야말로 천하 공공의 사업이 전문가의 검토나 공론의 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채 공당의 공약으로 걸린 것이다. 그것은 대선 후보자의 경박함에 기인한다기보다 필자가 보기엔 역사적으로 커다란 공의 세계를 창출하고 받들어보지 못한 한국사의 유산이나 부채에 속하는 현상이었다. 2007년의 대선에서 채산성도 없는 공항을 특정 지역에 건설하겠다는 모당 대선후보의 공약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빙공영사(憑公營私)의 공약이었건만 향당(鄕黨)의 완고한 정치세력은 그것을 지역의 기득권으로 고착시킴으로서 국민의 분열에 일조를 하였다.

가장 심각한 분열의 증후는 2008년 정권의 교체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은 촛불시위에서 관찰되었다. 여러 가지로 내걸린 명분에 구애되지 않고 시위를 조직하거나 참여한 정치세력을 분석하면 그것은 명확히 국민 범주를 복구하려는 신정부의 정책 지향에 맞선 민족 정치의 완강한 저항에 다름 아니었다. 더욱 심각했던 것은 천안함 폭침을 둘러싼 갈등이었다. 군사에 대해 하등의 전문 지식이나 경험을 갖지 못한 자들이 민족감정과 지역정치를 동원하여 정부의 공식 발표를 부정하였으며, 공당인 야당조차 그에 동조하였다. 그렇게 커다란 공의 세계가 붕괴했음이 더 없이 명백해지자 이번에서 각양의 시민단체, 환경단체, 심지어 종교단체까지 나서 마치 왕조시대의 붕당정치처럼 사회를 소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 공(公)을 참칭(僭稱)하고 있는 뭇 사당(私黨)의 소란을 잠재우려면 국민 범주를 건강하게 재건한 위에 정치가 정직하고 강건해지는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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