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45 페리 내항과 개국

4-1절 구미의 진출과 막부 말의 위기  45 페리 내항과 개국
[ 페리의 내항 ]
약 260년에 걸쳐 평화와 안정을 향유하고 있던 쇄국정책 하의 일본의 문호을 두드린 것은 미국이었다. 1853년 6월, 4척의 군함(구로후네)이 에도만 입구 가까운 우라가(가 나가와현[神奈川縣])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냈다. 군함에는 모두 100문에 가까운 대포가 실 려 있었다. 인솔자는 미국의 해군 제독 페리로, 일본에 개국과 통상을 요구하는 대통령의 국서를 휴대하고 있었다.

막부는 어쩔 수 없이 국서를 수취하였다. 페리는 회답을 얻기 위 해 다음 해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전하고 돌아갔다.

[ 로주(老中) 아베 마사히로의 고뇌 ]
페리가 떠난 후 로주(老中, 역주: 쇼군을 보좌하는 최고의 관직) 아베 마사히로(阿部政弘)는 반 년 뒤에 올 페리에 대한 회답에 고심하였다. 무엇보다 단순한 방법은 요구를 거부하고 외국선을 무력으로 물리치는 양이(攘夷)(*1)를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군사력의 진보를 멈추고 있던 에도막부가 실제로 양이를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아베 마사히로는 막부 단독으로 방침을 정하는 것 보다, 모든 다이묘의 의견을 듣고 국론을 통일하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다이묘의 의견 중에도 명안은 없었다. 또한 이로 인해 나라의 중요한 정책은 막부의 생각 뿐 아니라 많은 의견을 들어 합의로 결정해야 한다는 사고가 확산되어 막부의 권위는 오히려 저하되어 갔다.

(*1) 오랑캐(夷, 외국)를 물리친다는 것.

[ 일미화친조약과 해리스의 내일(來日) }
1854년 1월 페리는 다시 가나가와 앞바다에 나타났다. 교섭 끝에 막부는 페리의 요구에 응할 것을 결단하였다. 3월 미국과의 사이에 일미화친조약을 맺고 일본은 개 국하였다. 이 조약에 의거하여 일본은 시모다(下田, 시즈오카 현)와 하코다테(函館, 북해도)의 두 개 항구를 열기로 하고, 미국 선박에 석탄, 식료, 물을 보급하고 시모다에 미국 영사를 두기로 결정하였다.

1856년 일미화친조약에 의거하여 시모다에 부임한 미국 총영사 해리스는 무역을 개시하기 위하여 새로운 통상조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였다. 해리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고 판단 한 막부는 조정(朝廷)의 허가를 얻어 조약을 맺으려고 하였다. 막부는 정치 권한을 조정으로부터 부여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미국을 격퇴하는 양이(攘夷)를 취할 것인지 아니면 통상조약을 맺어 개국을 취할 것인지는 국론을 양분하는 큰 문제가 되어, 양 쪽 세력은 조정에 대해 영향을 끼치고자 시도하였다. 교토의 조정은 한 순간에 국정의 주 무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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