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친일파를 위한 변명'의 저자 김완섭 인터뷰

-------자신을 소개해 달라.
김완섭,1963년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이계열 82학번으로 입학했다 중퇴했다. 이계열은 요즘으로 치면 물리학과와 천문학과를 합친 것이다. 85년 방위로 입대,14개월을 복무했다. 졸업후 컴퓨터 관련 잡지사 3곳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광주민주유공자증

광주민주유공자증 (보훈번호 85-18****,장해14급)

-------고등학교 시절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사실이다. 5·18 국가유공자로 정식 등록돼있다. 지난 2002년 광주민주부상으로 분류돼 유공자로 등록됐다.

-------어떻게 유공자가 됐나?
고등학교 때 시민군으로 전라남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총을 잡았다가 살아남았다. 도청에서 시민군은 나를 포함 3명만 살아남고 모두 몰살당했다. 정부 진압군이 어린데다 대적하지 않았다고 나에게 총을 쏘진 않았다. 대신 끌려가서 흠씬 두들겨 맞고 6개월간 앓아 누웠다. 다행히 후유증은 없지만 유공자 등록 당시 장티푸스에 걸려 있던 것이 계기가 돼 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결혼은 했나.
공식 결혼은 1990년도에 했다. 93년에 별거,96년에 공식 이혼했다. 자녀는 없다. 여동생이 둘 있는데 2002년 ‘친일파를 위한 변명’을 내고 목숨이 위태롭다고 생각해 여동생들을 호주로 이민 보냈다. 광주에 계신 노부모는 그냥 그곳에 살고 계신다. 막내 여동생이 다음달 호주 이민을 아주 가는데 현재 잠시 함께 살고 있다.

-------결혼할 생각은 없나.
부모님이 더 나이 드시기 전에 2세를 안겨드리고 싶지만 나이도 적지 않은데다 빈털털이여서 쉽지 않다.


김완섭

-------일본에 망명신청을 한 걸로 안다.
두 번 했다. 2002년 검찰이 외환유치선동죄 운운하며 날 잡아넣으려고 했을 때 사형당할까 무서웠다. 일본대사관에 찾아가 망명 신청했다. 일본측이 한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인지 내 망명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김구 아들이 날 고소하자 검찰이 날 출국금지시켰다. 날 감옥에 넣겠구나 생각돼 다시 일본대사관에 망명 신청했다. 그러나 일본은 정치적으로 소극적이다. 대국으로서 안타깝다. 지금은 신변위협을 크게 느끼지 않아 망명 신청할 생각이 없다.

-------자신을 친일파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솔직히 난 친일 성향은 아니다. 가라앉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원래 일본을 싫어했다. 일본에 가보면 뭐든지 작고 불편했다. 하지만 일본을 알게 될수록 한국인으로서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것에 대해 미안해졌다. 우리는 무턱대고 일본이 나쁘다는 주입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겸양의 미덕이 있어 자기변명을 적극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본을 옹호해주고 싶었다. 일본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한 남학생이 슬며시 다가와 한국 사람을 만나면 먼저 몽둥이로 맞고 시작한다던데 언제 맞는지 얘기해달라고 하더라. 기왕이면 빨리 맞고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종군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시각이 일본 우익 편향이라는 지적이 있다.
일본은 침략이 아니라 전쟁에 말려들었다. 독일은 대량학살을 자행했지만 일본은 민간학살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폭피해를 당하지 않았나. 남경대학살도 새빨간 거짓말이다. 일본은 또 전후청산도 확실하게 했다. 일본 교과서를 보면 자신들을 침략국으로 묘사할 정도다. 위안부나 다른 문제도 전부 청산했는데 한국과 중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일본을 용서하려고 들지 않을 뿐이다.

-------안중근 의사를 민족의 원수라고 하는 이유는?
한국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진실을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한국인들은 수준이 낮아 내 주장이 담긴 책도 읽지 않고 욕부터 한다. 안중근은 양반 출신으로 조선의 지배계층이었다. 당시 조선의 양반들은 일본의 사회개혁을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독립의병도 알고보면 전부 양반들이 돈으로 깡패와 도둑을 모집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을 개혁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은 즉 의사가 아닌 폭도다. 또 이토는 평화주의자인데다 조선의 병합을 바라지 않았다. 특히 이토의 죽음은 일본 정부에 군부 득세를 가져왔고 이는 결국 조선에 대한 핍박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안중근은 민족의 원수다.


김완섭

-------초고속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 PC통신에서 악명(?)이 높았다던데.
케텔이나 엠팔, 하이텔 등 PC통신망에서 주로 컴퓨터와 관련한 정보를 올리면서 다른 네티즌들을 많이 알게 됐다. 당시 모 PC통신 동호회가 하이테크 상품에 대한 리뷰나 공동구매 등의 형식을 통해 컴퓨터 업계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동호회는 집행부 선거 때 온갖 부정으로 말이 많았는데 내가 이를 폭로하자 동호회인들이 나를 핍박했다. 온라인 권력과 싸움을 벌이면서 오프라인에서는 한 사람이 수십명과 싸울 수 없지만 온라인에서는 수만명과 대적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자극적인 글을 주로 올렸다고 하는데.
PC통신 서울대 동호회에서 좌파 대학생들의 편향된 시각에 반하는 글을 주로 썼다. 우루과이 라운드를 막을 게 아니라 빨리 도입해서 우리 산업을 글로벌화해야 한다는 개방론을 주장했다. 이런 글을 올리니까 날 죽창으로 찔러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대에 간첩이 많다고 주장한 걸로 알고 있다.
당시 주사파들이 북한과 직접 연결돼 있었다. 우리 친구들이 평양에도 몇번씩 다녀온 걸로 알고 있다. 실제로 수천명의 대학생 간첩들이 무기고 털어 관악산 빨치산하겠다고도 했다. 이젠 오히려 정부기관에서 이런 사실을 폭로해도 아무도 안믿는 세태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지령대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권을 쥐고 있다.

-------자꾸 자극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게 책을 팔기위한 상술이라는 지적이 있다.
아예 내 책 전문을 내달쯤 PDF파일로 인터넷을 통해 공개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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