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독도는 왜 일본땅인가?

 Category : 【 독도 】 Tag :
먼저 독도와 관련해서 최근에 나온 신문기사를 하나 인용하겠습니다.
동아일보 2006년 1월 1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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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이승만 평화선 선포: 1952년에 접어들면서 일본 어민들은 4월 28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이 연합국 측과 제2차 세계대전 종결을 위해 1951년 9월 8일 체결한 강화조약이 그날 발효되기 때문이었다. 일본을 점령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일본 어민들이 '본토' 주변의 정해진 선을 벗어나 조업할 수 없도록 했다. '맥아더 라인'으로 명명된 이 선은 강화조약 발효와 동시에 폐지될 터였다.

1952년 1월 18일. 100일 뒤면 동해는 일본 어민들의 텃밭이 될 판이었다. 바로 이날 바다 건너, 전화(戰火)에 휩싸인 대한민국의 임시수도 부산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이 '확정한 국제적 선례에 의거하고 국가의 복지와 방어를 영원히 보장하지 않으면 안 될 요구에 의하여' 해안에서 50∼100마일에 이르는 해상에 선을 긋고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 선언'을 한 것이다.

일본으로선 아연실색할 노릇이었다. 일본은 이를 '이승만 라인'이라 부르고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우방인 미국, 자유중국도 비난했으나 이승만은 까딱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일 간의 평화를 위한 것이라며 '평화선'으로 불렀다. 일본 정부가 어민들에게 '이승만 라인'을 무시하라고 하자 한국 정부는 군함까지 동원해 '평화선'을 넘는 일본 어선을 가차 없이 나포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어민 1명이 숨지기도 했다. 1961년까지 나포된 일본 어선은 300척이 넘고 억류된 일본인은 4000명에 가까웠다.

평화선은 어업 보호의 절박함이 낳은 산물이다. 당시 국내 어선을 모두 더한 총톤수는 10만톤. 그나마 대부분이 무동력선이었다. 일본은 총톤수 200만 t에다 그중 상당수가 한국 경찰선보다 빠른 '첨단'이었다. 맥아더 라인이 사라지면 한국의 어업이 침몰할 것은 뻔했다. 그렇다고 평화선이 어업의 보호만을 노린 건 아니다. 평화선 안에 독도를 포함시킨 것이 절묘했다. 강화조약의 '일본이 포기할 지역'에 독도를 넣어 달라는 요구가 거부되자 선수를 친 것이다. 다급해진 일본은 열흘 뒤 '한국의 일방적인 영토 침략'이라며 '독도 문제'를 쟁점화했으나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뒤였다.

항일 투사 이승만의 쾌거인 평화선이 한일 국교정상화 조약 조인(1965년 6월 22일)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자 우리 국민은 울분을 토했다. "얻은 것은 돈이요, 잃은 것은 평화선이다." [동아일보 여규병 기자 2006.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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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란 1951년 9월 8일에 조약참가국 49개국이 모두 서명을 마치고 1952년 4월 28일부터 발효에 들어간, 태평양전쟁을 마무리지은 대규모의 국제조약입니다. 일본은 이 조약이 발효에 들어간 날부터 다시 독립국이 되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물론 그 이전에는 미군이 통치하는 점령지역이었을 뿐 국가로서의 기능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당시 전쟁중이었고, 부산에 임시정부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은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진행되던 중 내내 미국을 상대로 해서 한국도 조약당사국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생떼를 씁니다. 한국도 전승국이라는 것입니다.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이런 생떼 어거지 주장을 받아줄 나라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국(조선)인들은 대동아전쟁 중 일본인들보다도 (물론 당시 조선인들은 모두 일본국적을 갖고 있었던 일본인입니다만, 여기에서 일본인은 내지의 원래 일본인만을 지칭합니다) 더 열심히 싸웠던 '일본령 조선'이라는 것을 연합국들은 모두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승국이 되겠습니까. 한국은 일본과 같은 패전국이었을 뿐입니다.

연합국들에 의해 조약당사자로 참가해달라는 생떼도 안먹히고 일본이 포기할 지역에 독도도 끼워달라는 생떼도 안먹히고 그래서 결국 1952년 4월 28일이면 일본은 다시 자주국가가 되고 독도는 일본령으로 편입될 시기였던 것입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이승만은 향후 진행될 국교협상에 더 많은 돈을 받아낼 목적으로 독도를 강제점령하고 일본 어부 4천여명을 부산으로 납치했던 것입니다. 위 기사를 보면 이것이 저의 독단적인 창작소설이 아니라 널리 인정된 역사적인 사실임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평화선은 1965년 한일국교협상이 타결됨으로 인해 실효되었고 따라서 당연히 독도도 다시 일본에 반환했어야 하는데 박정희는 여전히 독도를 일본에 돌려주지 않았던 것이죠. 그 이후 아직까지도 한국은 독도를 강점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말은 잘못된 것입니다. 강점이 아니라 평화적인 조약에 의해 합병된 것이기때문이죠. 그리고 한일합병에는 조선인들의 총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도강점이라는 말은 정확한 말입니다. 엄연히 국제적인 조약으로 인정된 인접국의 영토를 강제로 점령한 뒤 돌려주지 않으니 말입니다.

네이버에서 독도 이렇게 한번 쳐 보십시오. 지식in 에 보면 독도에 관한 여러가지 질문과 답변이 있습니다. 질문은 대체로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근거는? 뭐 이런 것이지만 논리적인 답변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하늘이 알고 땅이 안답니다." 이런 식이죠. 독도문제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비이성 몰합리 군중심리가 지배하는 전형적인 파쇼국가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독도문제를 둘러싼 여러가지 사인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출전 : 독도는 왜 일본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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