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위안부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을 군수공장에 동원하였다.해방 후 한국에서는 이 정신대를 일본군의 위안부로 혼동해 왔는데, 이 둘은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p.92)

한국 여성이 위안부가 된 사정에 관해 당시 심문을 맡았던 미국군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1942년 5월 상순 일본인 대리업자가 '위안봉사'를 시킬 한국인 여성을 모집할 목적으로 한국에 도착했다. 이 대리업자가 여인들에게 제시한 것은 큰 돈벌이, 가족의 빚 갚기, 쉬운 일, 신천지 싱가포르에서의 새로운 삶 등이었다. 이러한 꾐에 빠져 많은 여성이 해외 취업에 지원하고, 몇 백 엔의 전대금을 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무지했고 교육을 받지 못한 여성이었다. 대개 800여 명이 이렇게 모집되어 1942년 8월 20일까지 랑군에 도착하였다."
(p.92)

[출전]
미국 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 일본인포로심문서 No.49.
심문장소:Ledo Stookade,
심문일자 1944. 8.20.~9.10.

UNITED STATES OFFICE OF WAR INFORMATION
Psychological Warfare Team, Report No. 49.
Place interrogated: Ledo Stockade
Date Interrogated: Aug. 20 - Sept. 10, 1944

Early in May of 1942 Japanese agents arrived in Korea for the purpose of enlisting Korean girls for "comfort service" in newly conquered Japanese territories in Southeast Asia. ... The inducement used by these agents was plenty of money, an opportunity to pay off the family debts, easy work, and the prospect of a new life in a new land, Singapore. On the basis of these false representations many girls enlisted for overseas duty and were rewarded with an advance of a few hundred yen. The majority of the girls were ignorant and uneducated, ...
출처 : Report No.49:Japanese Prisoners of War Interrogation on Prostit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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