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Ⅲ. 한국현대사의 미완성

『광복 60년의 '사실주의'와 '교과서 바로쓰기' 운동』 시대정신[2005 봄] 통권 28호


무릇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어떠한 나라의 역사에도 자랑스러운 부분과 부끄러운 부분이 혼재되어 있다. 개인의 삶에 수많은 도전과 응전이 있고 따라서 성공의 이야기와 실패의 이야기가 혼재되어 있듯이, 대한민국의 현대사에도 자랑스러운 추억도 있고 그렇지 못한 슬픈 추억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에겐 부끄러운 역사를 압도할 만한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으며 또한 자부할 만한 것들이 많다는 점이다. 또한 회한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을 압도할 만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추억이 있으며, 또한 감동적인 ‘비사(秘事)’들이 많다는 것이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체험이 그러하고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도 대한민국의 역사를 그렇게 평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후손, 특히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부끄러움 못지않은 자랑스러움과 감동이 넘쳐흐르는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역사관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은 운명을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운명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가 애써 산으로 끌어올린 돌이 제 무게로 땅으로 내려오는 것에 대하여 실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산 밑으로 뛰어 내려가 바위를 다시 산으로 끌어올리듯이 말이다. 대한민국은 강력하고 까다로운 이웃나라들과 더불어 살아야하는 운명을 멍에처럼 지고 있었다. 이 국가적 운명과 역사적 운명은 선택한 것이 아니고 주어진 것이다. 또 세계적인 냉전구도도 강요된 것이었다. 그러나 분단과 전쟁, 빈곤이라는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치열한 삶을 살아온 것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물론 대한민국의 역사가 모두 자랑스럽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자랑과 자부심만을 느낀다면, 이른바 팔불출(八不出)의 부실한 사관이거나 국수주의자의 오만한 사관일 것이다. 역사에서 아쉬움과 회한도 아울러 짚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미래를 위한 균형 잡힌 사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관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우리 자손들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대한민국 현대사에는 굴곡과 좌절 및 아픔의 기억이 있다. 특히 세 가지의 미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의 미완성’, ‘산업화의 미완성’, ‘민주화의 미완성’이 그것이다. 시대착오적인 국토의 분단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미완성의 민족주의를 웅변해준다. 민족주의가 완성되었다면, 지금까지 겪고 있는 이 분단의 아픔은 벌써 치유되었을 것이다. 산업화도 우렁차게 시작되었지만, 완성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자신 있게 후기 산업화를 말하기 어렵다. 산업화가 완성되었다면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온갖 자본주의 모순과 시장의 실패, 노사분규 등이 지금보다 대폭 줄어들었을 것이다. 민주화는 어떤가. 민주화가 완성되었더라면 민주공동체의 질은 지금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정당과 정치는 ‘소금 뿌리기’와 ‘솥단지 던지기’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애정, 존중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초·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데리고 국회의사당 견학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국회의원들이 몸싸움과 패싸움 등, 당동벌이(黨同伐異)에 익숙한 습성을 고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완성들은 우리에게 ‘대한민국 찬가’를 부르는 데에만 전념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완성’을 위해 정진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미완성이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이 아름다운 것처럼, 대한민국의 미완성에도 아름다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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