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Ⅰ. 어떻게 볼 것인가?  “청년들이여, 낡은 역사관을 버려라”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외교권을 넘기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후 대한제국은 5년간 일제의 보호국으로 있다가 1910년 8월에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그 5년간에도 대한제국은 형식상 체통을 유지하였고, 또 엄밀히 말해 식민지화의 비극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아주 막힌 것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결과를 두고 볼 때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17일에 사실상 망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강의실에서 아예 그 날부터 일제 하의 식민지시대가 시작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이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오늘날 한국의 젊은이들이 어떠한 역사관을 가져야 옳은가라는 주제로 쓰고 있다. 그 주제를 100년 전 대한제국이 멸망한 사건을 중심으로 풀어가도록 하자.

우선 그 사건을 대하는 현대 한국인들의 올바른 자세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2∼3년 전부터 나는 2005년이 되면 한국의 역사학계와 사회과학계가 그 사건의 경위와 그 역사적 의의를 두고 매우 활발한 학술적 토론의 장을 마련할 것이라고 짐작하였다. 워낙 중요한 사건이고 마침 100주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5년을 거의 다 보낸 지금 돌아보니 나의 짐작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정치권과 그에 협조하는 일부 역사가들이 중심이 되어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해야 한다는 소리는 매우 높다. 그렇지만 그 사건이 왜 발생했으며, 그 사건은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라는 성찰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원래 중·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에서부터 그러하다. 국사교과서를 보면 1904년 러일전쟁까지의 역사가 이야기되다가 갑자기 역사의 무대가 바뀌어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언제 어떻게 나라가 망하였는지에 관한 서술이 없다. 그러니까 아직도 한국의 공식 역사학계에서는 그 부끄럽고 슬픈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정면으로 들려줄 용기를 내고 있지 못한 것이다. 이는 어쩌면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 체면주의와 깊은 연관이 있을 듯하다.

언젠가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의 전시회를 연 적이 있다. 조선의 국왕이 청나라 황제에게 올리는 외교문서에 사인을 하면서 ‘臣 아무개’라고 적은 문서가 그 가운데 있었다. 내 앞에서 이전 정부의 고위 관직을 지낸 어떤 분이 “저 신(臣) 자를 좀 가리지 그냥 두냐”고 역정 비슷한 소리를 하는 것을 뒤따라가면서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떳떳치 못한 역사는 가려져야 한다는 체면주의는 개인이나 가문과 같은 私의 역사라면 몰라도 국가의 흥망성쇠와 같은 천하 公의 역사에서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제국, 곧 조선왕조가 망한 이야기에 기분이 좋을 한국인은 아무도 없다. 당시 나의 증조부는 40대의 장년이었다. 그 얼굴이 가물가물한 나의 할아버지는 1885년생이시니 정확히 20세의 청년이었다. 그 분들은 조선왕조의 충직한 백성이었다. 철 따라 그 분들의 묘소를 살피고 또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 나도 아직은 조선왕조의 백성인지 모른다. 가끔은 그런 백성의식의 발로에서인지 나는 우리에게도 왕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느 일본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일본인이 예절 바르고 사회가 질서정연한 것은 천황의 존재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천황의 나라에 살고 있으니, 신하된 도리로서 조용하게 예절 바르게 살다갈 일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의 발달된 민주주의를 보면 턱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가끔 한국의 소란스런 사회와 정치에 기분이 상할 때면 그런 백성의식이 발동하여 우리에게도 왕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런 심정은 조금 나이든 한국인이면 누구나 한번쯤은 품어 보았음에 틀림이 없다.
그런 만큼 조선왕조의 멸망은 현대 한국인들에겐 아직도 동시대의 사건으로서 애통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 이야기가 나오면 한국인이면 누구든 주먹을 불끈 쥐고 조선왕조를 침입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한다. 북한은 아직도 일본을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는”(不俱戴天) 원수라고 한다. 무엇보다 고약한 자는 일제에 협조하여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 등의 을사오적이다. 그들에게 덮어씌워진 ‘매국노’란 지상최대의 불명예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금도 식을 줄 모르고 있다.

그렇게 그 사건을 두고 한국인들이 보이는 더 없이 격렬한 집단적이며 감정적인 대응의 저변에는 조금 전에 지적한 체면주의와 백성의식이 가로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나를 낳아 주신 할아버지가 그 시대의 백성이었고 그 백성의 주인인 왕조의 체면은 결국 나의 체면이라는 논리이다. 그렇지만 한국사회가 선진적인 문명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체면주의와 백성의식으로부터 과감히 해방될 필요가 있다. 도대체 조선왕조가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조선왕조 시대에 국가의 주인은 왕이었다. 하늘이 왕을 낳았고 그 왕이 다시 백성을 낳았다. 왕은 백성의 부모요, 백성은 왕의 발가벗은 아기이다. 이것이 조선왕조를 떠받친 정치철학이었으며, 왕조가 망할 때까지 그에 큰 변함이 없었다. 그러니까 나의 증조부와 조부는 그 시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조선의 왕은 조정에 참여하는 양반의 특권을 보호하고 지지하였다. 백성을 다스린 것은 그 양반이었다. 조선왕조가 망한 것은 그 왕과 양반의 지배공동체가 정치를 잘못하고 외교를 그르쳤기 때문이지 뭍 백성들이 잘못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반면에 오늘날의 한국인은 자유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서는 시민이 사회와 국가의 주인공이다. 국가는 사회로부터 파생된 이차적인 존재일 뿐이다. 그 국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민을 갈 수도 있다. 건국 후 지금까지 그렇게 이민 간 사람이 한국인구의 1/10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들의 남아 있는 친척과 친지를 따지면 한국인의 1/3이 탈국가 시대에 세계인으로 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그런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역사의식과 정치철학에서 자유롭고 자립적인 문명인이다. 역사라는 주민의 집단기억을 체면주의와 백성의식으로 짠 것이 전근대의 역사학이다. 현대의 문명인은 일체 그러한 전근대의 집단기억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여러 인간집단을 하나의 안정적인 질서체로 통합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이다. 결국 국가는 그가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있는 인간과 사회의 문명 수준을 대변하고 상징한다. 이에 국가가 망한다는 것은 한 시대의 문명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1905년 조선왕조의 패망도 결국은 마찬가지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찌 그 막중한 역사적 의의를 간악한 일본이 쳐들어 왔기 때문이라든가 소수의 매국노가 준동을 부린 탓으로 왜소화해 버리고 말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1905년 조선왕조의 패망은 그 왕조에 정치적으로 통합된 인간집단이, 특별히 정치적 선택의 책임을 졌던 지도계층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면 국가를 망하게도 할 수 있는가를 그들의 후손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한국인에게 참으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다. 다시 말하여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자립적인 현대 문명인으로서 그 시대의 그 사건을 냉정히 객관화하고, 그로부터 선진 사회와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교훈을 새로운 역사의식으로 도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출처 :<시대정신>2005가을,겨울 통권 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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