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7]-2 원조와 수입대체공업화

[17] 개발의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17]-2 원조와 수입대체공업화
이승만 대통령이 펼친 자립경제를 위한 공업화 노선을 가리켜 흔히 수입대체공업화(輸入代替工業化) 전략이라 합니다. 외국에서 수입하여 쓰는 공산품을 국내 공업을 일으켜 국산품으로 대체하자는 뜻입니다.
이 공업화 전략의 핵심적 정책 수단은 저환율 정책입니다. 예컨대 1달러에 300환이 시장에서 성립한 균형 환율임에도 1달러에 100환으로 1/3 수준으로 환율을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효과가 발생합니까. 미국에서 1달러어치 물건을 사올 때 300환이 아니라 100환만 지불해도 되지요. 수입대체를 위한 국내 공업을 일으키려면 미국에서 기계와 부품을 수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비용을 줄이고자 저렇게 저환율 정책을 취했던 것이죠.
이승만 정부가 저환율을 고집한 또 하나의 이유는 유엔군 대여금의 상환 달러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한국정부가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경로는 한국에 주둔하는 유엔군이 필요로 하는 한국화폐를 대여한 다음, 그것을 달러로 상환 받는 길이었습니다. 그때 될 수 있는 한 많은 달러를 상환 받으려고 저환율로 한국화폐의 가치를 실세 이상으로 높여 둔 것이지요. 이를 두고 미국정부와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미국은 부당하게 낮은 환율을 높이라고 요구하면서 대여금 상환 달러의 지급을 미루었습니다.


1961년 4월 준공된 충주비료공장

1961년 4월 준공된 충주비료공장.

이제 미국에서 원조가 주어지고 한국에서 집행되는 경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예컨대 어느 해에 미국의 원조가 3억 달러로 책정되었다고 칩시다. 3억 달러의 돈이 오는 것이 아니라 3억 달러만큼의 미국이나 다른 나라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입니다. 정부는 장부상으로 들어온 3억 달러를 민간의 수입업자에게 배당합니다. 가령 어느 업자가 100만 달러를 배당받았다 칩시다. 업자는 그에 상당하는 1억 환의 한국 화폐를 한국은행에 예치한 다음 수입허가증을 얻습니다. 그리고선 그 증서를 미국의 원조당국과 금융기관에 제출하여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오는 것입니다. 한국은행에 예치된 수입대금은 미국 정부의 감독하에 한국정부의 재정자금으로 지출되었습니다. 이를 가리켜 대충자금(對充資金)이라 했습니다.
달러를 배당받은 수입업자는 횡재한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입한 물건을 그대로 국내 시장에 내다 팔면 실세 환율에 따라 몇 배나 큰 이익이 생기니까요. 그럼에도, 정부가 그런 특혜를 부여한 것은 수입업자가 외국에서 원료와 부품과 기계를 사와서 팔아먹지 않고 공장을 지을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으로 공업화를 서둘러 일본으로부터 공산품을 수입하지 않아도 좋을 자립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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