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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 그 고집불통의 합리성

[17] 개발의 새로운 시대를 위하여  [17]-1 그 고집불통의 합리성

고아원 어린이들이 미국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고아원 어린이들이 미국 만화를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이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위한 마지막 주제로서 50년대의 경제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관련해서 소개할 《재인식》의 논문은 우정은 교수의 <비합리성 이면의 합리성을 찾아서ㅡ이승만 시대 수입대체산업화의 정치경제학>입니다. 이 논문은 50년대의 경제를 재평가함에 선구를 달린 연구입니다.
50년대의 경제와 관련하여 먼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한국 경제가 해방, 분단, 전쟁의 과정을 겪으면서 참으로 비참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1953~1955년 1인당 실질소득은 거의 1910년대 수준으로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1인당 실질소득이 1940년의 수준을 회복하는 것은 1965년이 되어서입니다. 그렇게나 비참한 상황에서 세금을 제대로 거둘 수 없으니까 국가 재정의 거의 7할이 미국의 원조자금으로 채워졌습니다. 1945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은 대략 31억 달러의 경제 원조를 제공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50년대 한국은 미국의 원조에 빌붙어 사는 거지와 같은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우정은 교수의 논문을 읽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미국의 원조로 먹고사는 나라가 미국의 요구를 물리치면서 독자의 경제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이 독자의 공업화를 이루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또 바로 옆에 일본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은 한국이 일본의 공산품을 수입해 쓰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대신 한국은 농업에 비교우위가 있으니까 거기에 주력하여 농업국가로 발전하는 편이 경제도 안정시키고 경제성장도 빨라지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았습니다.
1960년에 《경제발전의 제단계ㅡ반마르크스주의사관》이란 책을 써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미국의 로스토우(W.W.Rostow)라는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그가 1961년에 한국 경제에 관해 낸 보고서는 한국경제가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온 고질적인 동양적 문제로 절망적인 상태에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미국인이 보기에 한국 정치의 분열과 부정부패는 교정될 수 없는 풍토병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독자노선의 공업화를 추구하다니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약 30년 뒤 로스토우는 다시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자기가 틀렸음을 시인하면서 도대체 이 민족에 내가 알지 못했던 어떠한 문명의 저력이 있었던가를 물었지요.

그건 그렇고 50년대 한국 경제를 충고하던 미국의 입장은 확실했습니다. 미국의 원조로 경제를 안정시키면서 일본과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을 축으로 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고집불통의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본으로부터 필요한 물건을 사서 쓰라니, 그것은 다시 일본에 종속되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립경제의 건설을 위한 독자의 공업화 정책을 강행합니다. 미국이 어쩔 것이냐, 그렇다고 미국이 냉전의 전초기지인 한국을 버리기야 하겠느냐 하는 배짱에서였습니다. 사실 미국으로서도 이 완고하기 짝이 없는 노인 때문에 난처한 지경에 처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 13장에서 잠시 언급했습니다만, 한때 미국은 한국의 대통령을 장면처럼 미국에 고분고분한 야당 지도자로 갈아치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만, 이승만과 같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지도력이 한국의 실정에 더 좋다는 실용적인 판단으로 그만 접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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