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6]-3 교육혁명

[16] 1950년대의 재평가  [16]-3 교육혁명
우선 《재인식》에 실린 유영익 교수의 논문, <거시적으로 본 1950년대의 역사ㅡ남한의 변화를 중심으로>를 소개하겠습니다.

유영익에 의하면 50년대는 역사상 최초로 공화제 민주주의가 시도되고 나름대로 뿌리를 내린 시기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독재에도 대의민주주의의 기틀이 무너진 적은 없습니다. 예정된 선거는 반드시 치러야 했고, 집권당은 선거에서 이기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다 보니 부정선거가 생긴 것이지요. 건국 이후 1960년까지 대략 일곱 차례의 선거를 치르면서 보통선거제가 정착되어 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국민의 정치의식이 발달해서 사실상 양당제를 정착시켜 가는 성과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 점에서 저는 50년대의 정치를 두고 오늘날의 역사교과서가 ‘민주주의의 시련’을 이야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에는 이전 어느 시기에 민주주의가 활짝 꽃을 피운 적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50년대는 민주주의의 ‘시련’이라기보다 민주주의를 위한 ‘진통’ 또는 ‘산고’라고 말해야 옳습니다.

역사상 처음 민주주의를 학습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의 비용을 지불하였다는 뜻에서 말입니다.

유영익 교수에 의하면 50년대가 거둔 가장 볼 만한 성취는 교육에서였습니다.

가히 ‘교육기적’ 또는 ‘교육혁명’이라고 부를만큼 교육에 대한 국민적 수요가 폭발했던 시기가 50년대였습니다. 의무교육이 시행되고 각급 학교와 학생 수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1945~1960년에 걸쳐 초등학생이 163만에서 359만으로, 중·고등학생이 13만에서 78만으로, 대학생이 7,800에서 9만 8,000으로 증가했습니다. 여대생의 수는 1945년에 불과 1,086이었습니다만, 1960년까지 1만 7,000으로 늘었습니다.

대학생의 수가 크게 늘자 대학망국론이라 하여 그 사회적 폐단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당시 한국인의 일반적 인식에서 인간의 사회적 성공과 행복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력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대학에 가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이지요. 가난한 농민이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가리켜 우골탑(牛骨塔)이라 하는 이상한 말까지 생겨났지요. 그런데 자식을 공부시키려고 농가에 없어서 안 될 소를 파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민족이 이 지구상에 달리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했기 때문에 60년대 이후의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던 우수한 ‘사회적 능력’이 사회에 가득 축적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또한 많은 수의 학생과 관료와 군인이 해외 유학과 연수의 길을 떠났습니다.

1953~1966년에 7,400명의 학생이 외국 유학을 떠났고, 50년대에 걸쳐 2,400명의 공무원이 국외로 단기훈련이나 시찰을 다녀왔으며, 50년대에 걸쳐 9,000명 이상의 장교가 외국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다녀온 국가는 주로 미국이었습니다. 대학의 교수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너나 할 것이 없이 기회를 찾아 외국 연수를 떠나는 통에 물리학회의 경우 회장단이 모두 국내에 부재하여 정기총회를 열 형편이 못 되었다고 합니다.

유영익 교수의 논문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이러한 50년대의 성취를 19세기말부터 시작된 문명개화라는 장기추세의 한 국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개화기의 개화파 인사들은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에 별 욕심이 없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한반도에 대한 중국, 일본, 러시아의 욕심을 제어하면서 자주적 근대화의 길을 모색하였습니다. 고종황제의 무능과 무책으로 실천에 옮겨진 적은 없습니다만, 그러한 연미(聯美) 방식의 근대화 노선은 식민지기의 독립운동과 근대화 과정을 거쳐 해방 후에 이르러서는 미국으로 향하는 유학과 연수의 긴 행렬로 계승되었다는 겁니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저는 유영익의 이러한 문명사적 시각을 존중합니다.

몇 번이고 강조했습니다만, 지난 130년간의 한국 근·현대사는 개화기 이래 문명개화파와 그 후예들이 주도한 문명사의 대전환 과정이었습니다. 실은 저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고 사계의 원로이신 유영익 교수께서 오래전부터 해 오신 이야기를 제 나름으로 각색한 것일 뿐입니다.

메인 콘텐츠
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옛날사진 모음 친일파를 위한 변명 [목차](전문 게재) 대한민국 이야기 [목차](전문 게재) 동아일보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정 독도 바로 알기 화해를 위해서_박유하(일부발췌) 근대사 연표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