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5]-3 모스크바 문서가 이야기하는 전쟁의 진실

[15] 한국전쟁과 스탈린 X파일  [15]-3 모스크바 문서가 이야기하는 전쟁의 진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비밀이 해제된 구(舊)소련의 문서들이었습니다.

그 문서들이 전하는 생생한 정보에 기초하여 한국전쟁의 국제정치적 요인과 의미를 신정통설로 되돌려 놓은 논문으로서 《재인식》에 실린 김영호 교수의 <한국전쟁 원인의 국제정치적 재해석ㅡ스탈린의 롤백 이론ㅡ>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에 의하면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남침의 의사를 표명한 것은 1949년 3월 5일 모스크바 회담에서였습니다. 이에 대해 스탈린은 남한이 먼저 북침해 올 경우에 한해서 반격을 가할 수 있다고 하면서 김일성의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그리고선 김일성에게 남한에는 아직 미군이 주둔해 있으며, 38선은 소련과 미국이 합의해서 그은 국제적 성격의 분할선임을 상기시켰습니다.

그러했던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승인하는 것은 1950년 1월 30일의 일이었습니다. 10개월 사이에 몇 가지 중대한 국제정세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지요.
1949년 8월 주한 미군이 철수했습니다.


철원평야를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백마고지

철원평야를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 백마고지.

같은 해 10월에는 중국의 공산당 정부가 국공 내전에서 승리하여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를 대만으로 내쫓았습니다. 내전에 승리한 마오쩌둥은 1949년 12월 16일 스탈린에게 우호동맹을 제안합니다만, 스탈린은 여전히 망설입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연합군의 일원이었던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와 맺은 우호조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합군의 국제적 우호체제를 1945년의 얄타회담에서 비롯되었다 하여 흔히들 얄타체라 합니다. 소련은 그 얄타체제의 일환으로 미국과 합의하여 38선을 긋고 그 이북을 점령하였으며, 또한 일본의 북방 영토인 사할린을 점령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스탈린은 미국과의 냉전이 심화되는 가운데 새롭게 부상한 사회주의 우방인 중공과 우호동맹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1950년 1월 22일의 일입니다. 그로 인해 얄타체제가 붕괴하였습니다.

38선도 더는 우호적인 분할선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며칠 전인 1월 17일에 김일성은 다시 남침의 계획을 스탈린에 올립니다. 1950년 1월 30일, 드디어 스탈린은 38선을 돌파하겠다는 김일성의 제안을 승인하는 비밀 전보를 평양으로 날리지요.

결국 중국혁명의 성공으로 아시아에서 유리하게 전개된 전략적 상황을 적극 이용하여 한반도 전체를 소련의 영향권으로 흡수함으로써 미국과의 냉전대결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기 위한 적극적인 공세정책이었습니다.

남침계획을 승인한 스탈린은 1950년 4월 극비리에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과 회담합니다.

그 자리에서 스탈린은 미국이 개입 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그 대책으로 중공의 마오쩌둥에게 협조를 약속 받도록 지시합니다.

이후 5월 13일 김일성은 마오쩌둥을 찾아 남침 계획을 밝히고 협조를 구합니다.
마오쩌둥은 별도의 경로로 스탈린이 이미 그 계획을 승인하였음을 확인하지요. 그리고선 만약 미국이 전쟁에 개입하면 중국이 병력을 파견하여 북한을 돕겠다고 약속합니다.

곧바로 마오쩌둥은 만주 션양 부근에 9개 사단을 배치합니다. 아울러 소련과의 군사방위조약을 서둘러 체결합니다. 스탈린은 마오쩌둥에게 미국의 개입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합니다. 만약 미국이 압록강을 넘어 만주로까지 진격하면 중국과 소련의 협공을 받아 미국은 커다란 실패를 맛볼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1949년 소련이 원자폭탄의 실험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어쨌든 한국전쟁은 만주라는 광활한 지역을 덫으로 펼쳐 놓고 미국을 그곳으로 유인한 소련과 중공의 무시무시한 국제음모로 기획되었던 것입니다.

다른 한편 미국은 냉전이 심화됨에 따라 일본에 대한 점령정책을 일본 경제를 부흥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합니다. 그렇게 미국에 의해서도 얄타체제는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반도의 남쪽마저 가지겠다는 스탈린의 군사적 공세를 묵과할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한국전쟁은 냉전에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으려는 미국과 소련 간의 양보할 수 없는 전쟁으로 벌어진 것입니다. 한국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미국에 돌려온 종래 커밍스의 수정설은 이렇게 전쟁의 발발 과정을 소상하게 전하는 모스크바의 비밀문서가 공개됨에 따라 더 이상 발붙일 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한국전쟁은 주도면밀하게 기획되고 추진된 국제전이었습니다. 전쟁의 양상이 형언하기 힘들만큼 참혹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이상 김영호의 논문을 빌어 한국전쟁의 원인과 성격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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