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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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커밍스의 수정설

[15] 한국전쟁과 스탈린 X파일  [15]-2 커밍스의 수정설
도대체 이 말도 되지 않은 전쟁은 누가 무엇 때문에 일으킨 것입니까. 주지하듯이 남한에서 오랫동안 정통설로 받아들여진 것은 북한의 남침설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민족통일의 명분을 내걸고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얻어 남침을 강행하였다는 것이지요.

1980년대가 되면 이러한 정통설에 강력한 도전이 제기됩니다.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라는 학자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일월서각)이란 책이 그 도화선을 이루었는데요, 그것을 가리켜 흔히들 수정설이라 부릅니다. 수정설을 간략히 요약하면 내전설과 유인설의 두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내전설은 한국전쟁은 어느 날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고 멀게는 식민지기부터 시작된 서로 다른 이념의 국가를 세우기 위한 계급 간의 갈등이 해방 후 크고 작은 반란과 충돌로 이어지다가 결국 대규모 군사적 충돌의 전쟁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갈등을 증폭시킨 직접적인 계기는 미군정이었습니다. 미군정은 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는 혁명적인 민주노선을 억압하는 대신 소수의 보수적인 지주계급을 옹호하였습니다. 갈등의 핵심은 토지개혁이었으며, 미군정은 지주의 편을 들어 개혁을 미루기만 했습니다. 그에 대해 혁명적인 민주노선은 1946년 대구 폭동, 1949년 제주도와 여수·순천의 반란, 뒤이은 야산 유격대 등으로 저항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38선을 둘러싸고 남한과 북한의 두 군대 간에 크고 작은 무력 충돌이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진 것은 그러한 사실상의 내전의 연장에 다름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커밍스의 내전설이지요. 유인설은 북한이 남침을 하도록 미국이 덫을 놓았다는 뜻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의 경제는 전쟁에 따른 호황이 사라지고 1930년대의 악몽과도 같은 공황이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미국은 또 하나의 전쟁 특수를 위해 남한에서 일부러 미군을 철수시켜 군사적 공백 상태를 조장함으로써 북한군이 남쪽으로 내려오도록 유인했다는 것이지요.

1981년에 나온 커밍스의 수정설은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1980년대의 이른바 민주화운동의 파도를 타면서 커밍스의 수정설은 한국 현대사를 급진적으로 재해석하는 지렛대로 작용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바로 제1장에서 소개한 《인식》 여섯 권이라 할 수 있지요.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커밍스의 수정설은 《인식》에 실린 여러 논문이 주장하는 그대로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혁명론에 기초한 한국현대사의 좌파적 해석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는 논리적 필연을 안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연구 수준에서 커밍스의 수정설이나 논리나 실증에서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 12, 13장에서 쓴 그대로 남한에서 농지개혁은 무작정 미루어졌다기보다는 지주와 소작농 간의 자율적인 사전 방매의 형태로 해방과 동시에 시작되었으며, 1949년의 농지개혁법이 이후 급피치를 올려 한국전쟁 이전에는 사실상 완료된 상태였습니다. 토지개혁을 위한 민중의 혁명적 요구가 내전으로 이어지다가 한국전쟁으로 발전했다는 주장에도 근거가 없습니다.

38선을 둘러싼 크고 작은 군사적 충돌은 대개 1949년 8월까지의 일입니다. 그 이후엔 스탈린이 그것을 금지하는 엄명을 내린 바도 있어서 군사적으로 평온한 상태가 유지되었음이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명확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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