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3]-7 문명개화파의 적자(嫡子)

[13] 이승만 대통령 바로 알기  [13]-7 문명개화파의 적자(嫡子)
물론 이승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권위주의적이었다는 도덕적 비판에는 동의할 만한 점도 있습니다. 그가 재임 마지막 3~4년간데 범한 정치적 실수는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국민의 대다수가 문맹에다 소득 40~60달러의 가난한 소농이고, 사회는 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지극히 열악한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경제체제를 나라의 기초 이념으로 확고히 하고, 농지개혁을 통해 통합적인 국민을 창출하고, 사회주의 국제세력의 공세인 한국전쟁을 성공적으로 방위하고, 나아가 자유진영의 헤게모니 국가인 미국과 군사동맹을 이끌어 내는 등, ‘나라세우기’의 정치에서 그가 후대에 남긴 공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입니다. 1960년대 이후의 대한민국의 번영은 이승만이 강인하게 추구했던 ‘나라세우기’ 정치의 성과를 전제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요컨대 이승만은 그를 배제하고서는 대한민국의 출발을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나라세우기’에 지대한 공로를 남긴 사람입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교과서는 그를 건국의 원훈(元勳)으로 정중하게 모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와 정치적으로 대립한 사람들, 심지어 북한의 김일성까지 그 얼굴이 사진으로 전해지는 역사교과서에 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은 없습니까. 워낙 근거 없는 중상모략의 비난이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서부터 횡행하고 있어 그 점을 지적해 두지 않을 수 없군요.

마지막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긴 안목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한 정치세력을 어떻게 재평가해야 좋을까라는 전장의 말미에서 제기한 문제에 대답하겠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1876년 개항 이후 서유럽과 일본을 통해 전래된 근대 사상과 문물을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실천해 온 문명개화파였습니다.

이승만은 서재필을 통해 갑신정변, 갑오경장, 독립협회로 이어진 제1세대의 개화파를 계승한 사람이지요. 뒤이은 식민지기를 거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노선에 참여했습니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사람들만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일제의 차별과 억압을 받으면서 근대를 이해하고 실천하면서 근대적 인간으로 성장해 온 수많은 사람들이 문명개화파의 계승자였습니다. 그들이 일제의 패망과 미국체제의 성립이라는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체제의 일대 전환을 맞아 한반도 남부에 세운 근대국가가 대한민국인 것입니다. 요컨대 한국 근·현대사에서 대한민국의 건국은 이승만을 주요 대리인으로 한 개화기 이래의 문명개화파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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