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3]-5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의 재해석

[13] 이승만 대통령 바로 알기  [13]-5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의 재해석
《재인식》에 실린 김일영 교수의 또 하나의 논문, <전시 정치의 재조명ㅡ부산 정치파동의 다차원성에 대한 복합적 이해ㅡ>를 읽고 난 저의 소감은 씨름판에서 뒤집기 기술을 봤을 때처럼 통쾌한 것이었습니다. 이 논문이 다룬 사건은 1952년 6월 임시수도 부산에 서 있었던 이른바 발췌개헌을 둘러싼 정치파동입니다. 발췌개헌으로 대통령 선거는 종전의 국회 간선에서 국민 직선의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일반적으로 이를 계기로 국회의 견제를 벗어난 이승만의 독재정치가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점은 어김없는 사실입니다만, 김 교수는 사건의 뒷면에 숨겨져 온 의미를 들추어냄으로써 이 정치파동이 이승만이 강인하게 추구해 온 ‘나라세우기’ 정치의 일환이었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진 후 이승만 정부는 사흘 만에 서울을 함락 당하는 등, 연이은 실정으로 민심을 잃고 있었습니다. 국회의 반이승만 세력은 이 참에 내각제 개헌을 추진하여 이승만을 밀어내고 장면을 수상으로 앉힐 책략을 꾸미면서 미국과 군부의 양해까지 얻어냅니다. 미국은 북진통일을 부르짖으며 휴전협상에 비협조적인 이승만의 제거에 관심을 갖지요. 그렇지만 이승만이 보기에 그의 반대자들은 미국의 정책에 너무나 양순한 자들이었으며, 그들이 집권할 경우 휴전에 따른 영구분단은 피할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에 그는 헌병부대를 동원하여 사실상 친위 쿠데타를 감행합니다. 일부 의원을 간첩으로 몰아 체포하고, 계엄령을 선포한 다음 국회를 해산하겠다고 협박합니다. 이 같은 이승만의 강인한 공세에 밀려 미국도 결국 양보합니다. 이승만 이외의 다른 대안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결국 미국의 주선으로 이승만과 반대파가 타협하여 대통령의 국민직선제와 정부형태의 내각책임제를 가미한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른바 부산 정치파동은 겉보기에는 이승만과 국회의 반대파 간에 집권을 둘러싼 거친 충돌이었지만, 그것을 넘어 전쟁정책과 통일정책 나아가 동아시아정책 전반을 둘러싸고 미국과 대립했던 이승만 대통령의 한판 승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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