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3]-3 그의 정치적 자산

[13] 이승만 대통령 바로 알기  [13]-3 그의 정치적 자산
둘째, 이승만은 철저히 현실적이며 실리적인 정치가였습니다. 중국 마오쩌둥은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만, 그가 한 여러 말 가운데 가장 옳은 이야기 같습니다. 이승만은 정치의 그러한 속성을 누구보다 일찍 깨닫고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국제정치의 냉혹한 실리주의에 대해 그는 그 누구보다도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한제국의 멸망 과정을 두 눈으로 목도한 사람입니다. 주권자가 무능하거나 나약하면, 정치엘리트들의 처신이 기회주의적이면, 사회가 분열하고 타락하면, 한 나라가 어떻게 망하게 되는지를 눈물로 관찰한 사람이지요. 감옥에서 나온 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미국의 도움으로 대한제국의 멸망을 막아 볼 요량이었습니다. 참으로 사마귀가 다리를 들고 수레바퀴에 대드는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무모함이었다고나 할까요. 그 최초의 실패한 외교활동에서 이승만은 국제정치가 얼마나 냉혹한 것인지를 깨닫습니다. 이후 5년간 그는 하버드와 프린스턴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이후 그가 벌린 외교 중심의 독립운동은, 그의 비판자들이 자주 지적하듯이, 1945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그럴듯한 성공을 거둔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패망한 나라의 무기력함을 그는 그 과정에서 몇 번이고 통절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실패의 쓰라림이 반복되면서 그는 어떠한 명분론에도 쉽게 현혹되지 않는 매우 철저하고 현실적이며 실리적인 정치가로 성숙하였습니다.

살벌한 ‘나라세우기’의 정치무대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의명분도 중요하지만 자신을 믿고 끝까지 따르며 목숨까지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확고한 지지 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해방공간의 정치에서 이러한 친위부대를 확보한 사람은 제가 보기에 조선공산당의 박헌영을 제외한다면 이승만뿐인 것 같습니다. 오랜 미국생활에서 돌아온 이승만이 그러한 정치세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임시정부의 대통령을 지냈다는 원래부터의 명망에다 반공주의의 흔들리지 않은 원칙과 그에 입각한 대동단결을 지속적으로 호소하였던 정치기술 때문이었습니다. 대동단결은 다음 장에서 이야기할 친일파 문제에 대한 그의 정치적 처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의 정치적 입장은 단순 명료하였고 또한 강력하였습니다. 월남 동포를 포함하여 공산주의에 위협을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던 것이지요.

어느 연설에서 그는 지지자들에게 외쳤습니다. “여러분이 내 지휘를 받아서 ‘죽자’하면 다 같이 한 구덩이에 들어가서 같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그러자 ‘예’하는 대답이 우렁차게 장내에 울려 퍼졌습니다. 흥분한 사람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승만은 대단한 연설가였습니다. 그렇지만 한갓 선동만은 아니지요. 재삼 강조합니다만 그가 발휘한 선동의 힘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와 반공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에 입각한 것이었고, 그 점에서 이승만의 정치는 처음부터 말과 행동이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그 점이야말로 최후의 승자로서 이승만이 지녔던 최대의 정치적 자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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