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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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개종과 자유민주주의

[13] 이승만 대통령 바로 알기  [13]-2 개종과 자유민주주의
‘나라세우기’의 성공한 정치가로서 이승만 대통령은 첫째 동시대의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한 자유민주주의 신봉자였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에게 있어 거의 종교적인 것이었습니다. 1875년에 태어난 이승만은 나이 20세까지 과거시험을 위해 전통 성리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정신세계는 전통 성리학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는 1894년 갑오경장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되자 배재학당에 들어가 서재필 선생을 통해 서유럽의 사상과 문물을 접하게 됩니다. 이후 이승만은 독립협회의 활동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종황제의 폐위 음모에 가담한 반역죄에 걸려 1899년부터 근 6년간 감옥에 갇히는 몸이 됩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그는 배재학당에서 들은 어느 선교사의 설교를 기억해 내곤 그의 영혼을 기독교에 의탁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정신세계에 관해 저는 많이 알지 못합니다만, 대강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죄인의 몸으로 홀로 선 인간은 오로지 하나님의 자비로 하나님의 소명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그의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그의 구원을 대리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오로지 자신의 책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종교적 구원관에서 기독교의 정신세계는 본질적으로 개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성리학의 정신세계와는 많이 다르지요. 성리학의 세계에서 인간은 부자(父子), 군신(君臣), 형제(兄弟), 붕우(朋友)와 같은 인간관계의 일환으로서만 그 존재론적 근거를 부여받습니다. 그에 비하자면 서유럽 기독교의 정신세계는 절대자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빚어지는 긴장이나 고독이나 불안을 특질로 하지요. 그러한 정신세계는 인간의 사회적 관계나 정치적 행위와 관련하여 개인주의와 자유주의로 자신을 표방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여기서 그런 복잡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개종 이후 이승만의 일생은 기독교인으로서 종교적인 삶이었습니다. 1910년대까지 그의 정치 연설은 많은 경우 종교적인 설교이기도 했습니다. 이승만의 기독교적 정신세계는 정치가로서 그를 자유민주주의의 비타협적인 실천가로 만들었습니다.

그에게서 공산주의와의 타협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컨대 공산당이 찬성한 신탁통치도, 미군정이 추진한 좌우합작도 그가 보기에 처음부터 될 일이 아니었습니다. 집권 이후 그의 통일정책인 북진통일도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의 일관된 표현이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이 개입하자 미국은 휴전을 추진합니다만, 그에 대해 이승만은 완강히 저항하면서 북진통일을 추진합니다. 전쟁 이후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의회에서 연설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때에도 이승만은 미국이 제3차 세계대전의 위협을 무릅쓰면서라도 공산주의와 대결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했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후진국에서 온 한 늙은 정치가의 훈수에 불쾌감을 느꼈겠습니다만, 이승만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와의 대결은 이승만에게 종교적인 신념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승만의 철저한 반공주의는 동시대의 다른 정치가에게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개인주의나 자유주의가 결여된 우리의 사상적 전통을 생각할 때 그러하다는 말이지요. 전통 성리학의 세계에서는 백성을 골고루 잘 살게 함을 정치의 최고 미덕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런 연유로 전통 성리학과 공산주의는 처음부터 일정한 친화성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많은 지식인들이, 아마도 지식인의 대다수가, 사회주의 사상에 경도된 것도 그 같은 정신적 전통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그에 비하자면 성리학자 출신이기도 한 이승만이 그토록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것은 무언가 특별한 설명이 요구되는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그것을 바로 기독교로의 개종에서 찾고 있습니다. 앞서 저는 20세기의 한국사를 전통유교 문명과 서유럽기독교문명의 만남과 융합, 그러한 의미에서 문명사의 대전환 과정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야말로 다른 누구보다 강렬하게 그러한 대전환을 자신의 인생사로 대변하는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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