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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소경영적 개혁

[12] 건국의 문명사적 의의  [12]-6 소경영적 개혁
장시원 교수의 논문에서 주목되는 한 가지는 농지개혁이 ‘소경영적 개혁’이라는 주장입니다.

너무 중요한 개념이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군요. 실은 토지개혁은 여러 후진국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공의 예가 드물지요. 예컨대 멕시코의 경우 1821년에 독립한 뒤 지금까지 세 차례나 큰 토지개혁이 시행되었습니다만, 매번 실패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들이 가난을 못 이겨 얼마 있지 않아 토지를 다시 백인 지주들에게 팔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토지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토지를 분배 받은 농민들이 자립적으로 농업을 꾸려나갈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대한민국의 농지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역사적 전제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설명할 여유는 없습니다만, 관련 연구에 따르면 17세기 이래 농민의 소농으로서의 자립성은 크게 높아져 왔습니다. 앞서 이 시기에 사실상의 사유재산이 발달했다고 했는데, 그것과 짝을 같이 하는 현상이지요. 19세기에 들어와 경제적으로 큰 혼란이 있었던 것은 제3장에서 서술한 그대로입니다만, 17~18세기의 전통사회가 이룩한 소농경영의 자립성은 세계적으로 꽤 높은 수준이었으며, 20세기의 식민지기를 거치면서 더욱 높은 수준으로 고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지개혁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그 자립도를 높여 온 소농들에게 토지를 분배하였으며 그 이유로 성공하였던 것입니다. 그와 대조적인 또 하나의 실패를 사회주의의 토지개혁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북한이나 중국에서 강행된 집단농장이 인민들에게 기아의 비참한 선물을 안겼을 뿐임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소농경영의 높은 생산력을 강제로 파괴한 업보였지요. 북한은 아직 그 모양입니다만, 사회주의 중국이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들어 인민공사를 폐지하고 개별 소농체제로 돌아가자 농업생산이 얼마나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습니까. 바로 그러한 전통사회로부터의 유산을 대한민국의 농지개혁은 처음부터 잘 간직하고 발전시켰던 것이지요. 장시원의 ‘소경영적 개혁’이란 바로 그러한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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