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2]-5 애비는 종이었다

[12] 건국의 문명사적 의의  [12]-5 애비는 종이었다
독자 여러분은 시인 서정주의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하는 <자화상>(1937)이란 시를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이 위대한 서정시인은 애비가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시인은 종의 신분을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조선시대의 노비문서를 보면 수개(壽介)라는 점잖게 생긴 이름이 자주 눈에 뜨입니다만, 실제론 수캐라는 뜻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그 수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처럼 헐떡이며 나는 왔다.” 저는 아직 이렇게 자신의 천한 신분을 한 시대의 아픔으로 승화시켜 노래하는 고결한 영혼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흔히들 시인을 친일파라고 욕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시 하나만으로도 그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노비라 하니 생각이 납니다만, 1920년대 전라도 구례군 토지면의 유씨 양반가의 일기는 정월 초하루에 집안의 종들이 찾아와 사랑에 앉은 주인을 향해 세배를 드리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날 주인은 “비록 세상이 변하였지만, 주노(主奴)간의 상하 의리는 변하지 않는구나”라고 일기에다 적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바뀌면 주인집을 찾아 마당에서 수캐처럼 엎드려 세배를 드려야 했던 것이 종놈의 처지였습니다. 그 종놈의 신분이 농지개혁으로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농지를 분배받은 그들은 토지를 팔고 자기의 원래 신분을 모르는 다른 지방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새로 토지를 구입하여 독립자영농으로 열심히 일하여 꿈에 그리던 일가를 창립하지요. 그중에는 자식농사를 잘 지어 초등학교 교사까지 시킨 사례가 채집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민평등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지요. 빈농의 자식이라도 머리만 좋으면 대학에 다니고 판검사도 하고 심지어 대통령까지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제헌헌법이 선포하고 있는 그대로 어떤 형태의 차별도 특수계습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은 건국의 이념이 농지개혁을 통해서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농지개혁은 ‘나라세우기’(state building)와 더불어 전개되어야 할 ‘국민만들기’(nation building)의 첫걸음이었습니다.

농지개혁의 효과에 관해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비판적인 견해가 우세했습니다. 정부가 직접 수용하여 분배한 토지가 전체개혁 대상의 절반도 되지 않은 가운데, 많은 토지가 지주에 의해 은닉되거나 사전에 소작농에게 고가로 강제 처분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최근의 여러 구체적인 연구는 지주가 사전 방매한 토지의 가격이 법정 상환가격보다 높지 않음이 일반적이었으며, 또 대량의 사전 방매도 결국 개혁의 강제성 때문인 만큼 크게 보아 농지개혁의 효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재인식》에 실린 장시원 교수의 논문, <농지개혁ㅡ지주제 해체와 자작농체제의 성립ㅡ>은 이러한 새로운 동향의 연구 성과를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농지개혁으로 지주제가 소멸하고 전 경지의 96%가 자작지로 바뀌었습니다. 농지개혁의 효과는 어느 정도 국가체제가 안정된 195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농지를 소유하게 된 농민들의 생산의욕으로 농업생산력이 부쩍 증가하기 시작했지요. 역시 생산자 대중이 자기 재산을 갖게된 개혁의 역사적 의의는 깊고 큰 것입니다.

『 애비는 종이였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의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으련다.

찬란히 틔어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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