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2]-4 농지개혁

[12] 건국의 문명사적 의의  [12]-4 농지개혁
이상과 같이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경제적으로 자유시장 체제를 국제의 기본으로 하여 출발하였습니다. 건국의 역사적 의의와 관련하여 한 가지 언급을 빠뜨릴 수 없는 문제가 있군요.

농지개혁이 그것입니다. 종전까지 농촌사회는 지주제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토지를 가난한 소작농에게 빌려 주고 수확의 절반을 지대로 수취하는 생산관계가 지주제입니다. 그 역사적 기원이 15세기 조선왕조 초기로까지 올라갑니다만, 지주제가 본격적으로 발전하는 것은 개항기와 식민지기에 걸쳐서입니다. 1936년 현재 전체 농가의 75%가 순소작이나 자소작으로 소작관계 농민이었습니다. 소작농들은 지주에 수확의 절반을 바치면서도 소작지를 떼이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했던, 사실상 농노나 다를 바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약탈적인 토지이용관계를 그냥 두고서는 근대국가에 합당한 인격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자립적인 국민의 성립을 기대할 수 없지요. 농지를 경작 농민에게 분배하는 토지개혁은 시대적 당위로서 피해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에 제헌헌법은 농지개혁을 선언했습니다. 제86조가 그것입니다.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 그 분배의 방법, 소유의 한도, 소유권의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1949년 6월 농지개혁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농지 소유의 상한은 3헥타르로 정한 다음, 그 이상의 모든 농지를 지주로부터 유상으로 수용하여 소작농에게 유상으로 분배하였습니다.

유상으로 수용하고 분배한 것을 두고 북한의 무상수용과 무상분배보다 덜 개혁적이었다는 주장을 가끔 듣습니다만, 이는 잘못입니다. 유상으로 수용하고 분배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원리인 사유재산을 존중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무상 개혁은 이 핵심 원리의 부정입니다. 그래서 농민에게 토지가 분배되었지만, 무상 분배인 한에서 그 소유권은 온전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산 것이 아닌데 어찌 온전한 사유재산이 되겠습니까. 당연히 북한 당국은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준 다음 매매나 저당 같은 재산권의 처분 행위를 제한하였습니다. 그러고선 어떻게 되었습니까. 토지를 나누어 준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 회수하여 집단농장체제로 가고 말았지 않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농지개혁이 시행된 결과, 농촌 주민은 모두 자작농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 있은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가가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준 것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722년 통일신라가 “백성에게 정전(丁田)을 나누어 주었다”라고 한 기록이 처음입니다. 그렇지만 제 생각으론 당시의 ‘백성’이란 농촌사회에서 중상층의 지위에 있던 농민을 가리키며, 하층 농민까지 분배의 대상이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대한민국의 농지개혁은 유사 이래 농민이 자신의 토지를 소유하게 된 일대 쾌거였습니다. 그 결과 어떠한 변화가 생겨났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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