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2]-3 자유시장 경제체제

[12] 건국의 문명사적 의의  [12]-3 자유시장 경제체제
둘째, 신생 대한민국은 개인의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제헌헌법 제15조는 “재산권은 보장된다. 그 내용과 한계는 법률로써 정한다”고 하였습니다. 경제활동의 자유는 1962년 개정 헌법에서 보다 명확하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동 헌법 111조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했습니다.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는 시장경제의 바탕으로서 경제성장의 기초적 조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경제적 번영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재산권에 기초하고 있지요. 그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규정한 법률은 민법입니다. 민법이 어떠한 과정으로 성립했는지에 관해서는 제5장에서 설명한 바가 있습니다. 다시 간략히 말씀드리면 1912년 조선민사령의 시행을 통해 일본의 민법이 조선에 이식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소유권 절대의 원칙’과 ‘계약 자유의 원칙’을 골간으로 하는 근대적인 재산세도가 유·무형의 재산권에 걸쳐 포괄적으로 성립하였습니다. 그 민법 또한 역사적 기원이 서유럽으로서 일본을 거쳐 들어 온 수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식민지기에 성립한 근대적 재산제도를 신생 대한민국은 온전하게 계승하였습니다.

함부로 식민지적 잔재라 하지 마십시오. 그 기원이 서유럽이었던 만큼 그것은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향유할 문명의 값진 유산이었습니다. 제9장에서 이야기했습니다만, 사회주의 북한은 1946년 일제가 제정한 민법을 포함한 일체의 법률을 폐기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북한이 문명의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고 말았던 비극에 대해서는 이미 지적한 그대로입니다.

여기서 한마디 덧붙일 것은 근대적인 재산제도가 안정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실상의 사유재산이 전통사회에서부터 성숙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고 형식적인 제도만 성립할 경우, 그 제도는 아무런 기능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한 경우를 오늘날의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후진국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부의 탄생》(시아출판사, 408쪽)이란 책에서 읽었습니다만, 지금도 페루의 리마에서 집 한 채를 구입하는 데 728가지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한 개인이 소유권의 주체로 성립해 있지 않고, 가족과 친족과 촌락 등 여러 사람이나 단체가 권리를 분할해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재산제도를 만들어 봤자 별 소용이 없는 것이죠. 오늘날 제3세계가 안고 있는 빈곤과 저성장의 주요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에 비하자면 19세기까지 조선의 전통사회에서는 사실상 근대에 준하는 높은 수준으로 재산권이 성숙해 왔습니다. 앞서 소개한 대로 15세기의 《경국대전》은 일반 백성을 소작농에 준하는 ‘전부’(佃夫)의 지위로 규정했습니다만, 이 규정은 17세기 이후가 되면 거의 효력을 상실합니다. 그 대신 토지대장에 ‘기주’(起主)라 하여 백성이 토지의 사실상의 주인임을 표시하는 규정이 나타나기 시작하지요. 그러다가 조금 전에 이야기한 대로 대한제국의 고종황제가 ‘시주’ 규정을 만듭니다만, 그것은 대한제국과 더불어 곧바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연후에 식민지기에 이르러 근대 민법의 도입으로 일반 인민이 오늘날과 같은 ‘소유자’라 하여 재산권의 주체로 확립하게 되지요. 그러니까 제헌헌법이 보장한 근대적인 재산권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통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유산이 있었고 그것이 일본을 통해 들어온 근대적 소유법제와 잘 어울렸다는 역사적 전제가 작용해서 가능한 일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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