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3- 사회 불안의 심화 (국사 교과서 p225-227)

조선 후기에도 여전히 지주의 대부분은 양반이었지만, 일반 서민 중에서 농지의 확대, 영농 방법의 개선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지주가 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공명첩을 사거나 족보를 위조하여 신분을 상승시키기도 하였다.

양반이 되면 군역을 면할 수 있는 이익이 있었으며, 양반 지배층의 수탈을 피해 부를 축적하는 데 각종 편의를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양반 신분을 사들인 농민은 더 나아가 향촌 사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고자 하였다.

재정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는 정부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부농층에게 관직을 팔았다.

조선 후기 향촌 사회에서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관권이 강화되고 아울러 관권을 맡아 보고 있던 향리의 역할이 커졌다.

관권의 강화는 세도 정치 시기에 정치 기강이 무너지는 상황 속에서 수령과 향리의 자의적인 농민 수탈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지배층과 농민층의 갈등은 깊어지고, 지배층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농민 경제는 파탄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농민의 의식은 점차 높아져 곳곳에서 적극적인 항거 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도 탐관오리의 탐학과 횡포는 날로 심해 갔고, 재난과 질병이 거듭 되었다. 특히, 19 세기에 들어와 이런 현상이 더욱 심해져 농민의 생활은 그만큼 더 어려워져 갔다. 1820년의 전국적인 수해와 이듬해 콜레라의 만연으로 많은 백성이 목숨을 잃는 비참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 피해는 그 뒤 수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에 따라 굶주려 떠도는 백성이 거리를 메울 지경이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백성 사이에는 비기, 도참설이 널리 퍼지고, 서양의 이양선까지 연해에 출몰하자,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갔다. 사회 불안이 점점 더해 감에 따라 각처에서는 도적이 크게 일어났다. 화적은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지방의 토호나 부상을 공격하였고, 수적은 배를 타고 강이나 바다를 무대로 조운선이나 상선을 약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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