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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1]-3 소용돌이의 중앙 정치

[11] 분단의 원인과 책임  [11]-3 소용돌이의 중앙 정치


신탁통치안을 찬성하는 좌파의 시위

신탁통치안을 찬성하는 좌파의 시위.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만, 사람들은 가문과 촌락과 같은 전통적 사회관계에 익숙해 있었을 뿐입니다. 회사, 조합, 교회, 우애단체 등, 시민사회의 성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개인과 국가 간의 중간단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국가는 강대했으며, 개인은 허약하였습니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는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 구조에서 중앙정치는 아무런 여과 없이 개인을 대량으로 동원하였습니다.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조차 걸핏하면 정치를 입에 담을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중앙정치의 과잉현상을 당시 미국대사관의 문정관으로 근무하던 그레고리 핸더슨(Gregory Henderson)이란 사람은 ‘소용돌이의 정치’(politics of vortex)라고 표현했습니다. 미국 남부의 평원을 가끔 엄습하여 집과 마을을 파괴하는 토네이도라는 거대한 회오리바람 있지 않습니까. 소용돌이란 그런 걸 말합니다. 핸더슨은 한국의 중앙정치가 발휘하는 거대한 흡인력을 그렇게 시니컬하게 비유하였지요.

중앙정치는 이념을 달리하는 정파 간의 치열한 난투극이었습니다. 중앙의 난투극은 ‘소용돌이의 정치’를 통해 전국적 범위로 확장되었습니다. 저 산골의 필부조차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상호 분열하였습니다. 왼쪽으로 동원된 사람들은 계급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공평하게 잘 산다는 사회주의의 미망(迷妄)을 추구하였습니다. 농촌사회에서 차별을 받던 하민들이 주로 그 쪽 편에 섰습니다.

반면에 개인의 가치와 사유재산의 원리를 중시하는 상공업자, 신흥 테크노크라트, 농촌의 부민은 오른쪽에 가담하였습니다. 전통 유생들은 대개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을 모시는 입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른쪽에 가담한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결속하는 명분은 민족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민족은 오늘날과 달리 우파 자유진영의 정치적 자산이었지요.

그렇지만 좌와 우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생소하기는 마찬가지인 계급이니 민족이니 하는 명분에 이끌려 영문도 잘 알지 못한 채 대립하고 분열하였습니다. 제가 방문한 적이 있는 충남 논산군 성동면의 어느 마을에서는 엉뚱하게 지주 가문이 좌익이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지배를 받던 마을의 하민들이 우익에 가담하였습니다. 경북 예천군 보문면의 어느 마을에 가보니 거기서는 윤씨 친족집단과 정씨 친족집단이 대립하였는데, 윤씨가 왼쪽으로 가자 정씨는 무조건 오른쪽으로 갔습니다. 명실상부하게 ‘우리 민족’이라 할 만한 공동체의식과 그에 상응하는 정치적 단합이 성립해 있었더라면 어찌 그런 일이 가능했겠습니까.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사회들’(societies)이 넉넉히 성립해 있었더라면 어찌 바깥에서 배를 타고 들어온 계급이니 민족이니 하는 수입 담론으로 인간들이 그렇게 대립하고 분열할 수 있었겠습니까.

서로 얼굴을 빤히 아는 농촌사회마저 그러하였기에 익명의 인간들이 대립한 중앙정치가 더욱 그러했음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다른 이념의 정치가들이 허심탄회하게 약간씩 양보하면서 민족의 분단만큼은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다짐을 놓은 적은 없었습니다. 언젠가 저는 미군정의 지원하에 여운형과 김규식 선생을 중심으로 전개된 좌우합작운동을 알고 싶어서 관련 연구서를 정독한 적이 있습니다만, 적잖게 실망하고 말았습니다. 좌우합작운동이라고 하나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했던 것처럼 공개적인 협약과 실천으로서 합작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합작을 위한 명분과 설득이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했을 뿐입니다. 그를 위해 서울의 이름 있는 정치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적은 없었거니와 그 때문에 평양의 정치가들이 서울에 온 적은 소문조차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좌우합작운동’이란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좌우합작시도’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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