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11]-2 해방 공간의 사회 실태

[11] 분단의 원인과 책임  [11]-2 해방 공간의 사회 실태
이제 조금 감정을 가라앉히고 민족 분단의 원인을 차분히 따져 보도록 합시다. 역사관의 문제를 배제하고 논리적으로만 이야기하더라도 위 교과서의 서술에는 다음과 같은 허점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해방 이전부터 우리 민족의 대다수가 합의한 ‘나라세우기’(state building)의 마스터플랜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전제가 설정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이 사실일 수가 없지요. 민족이란 것 자체가 설정되어 있습니다만, 그것이 사실일 수가 없지요. 민족이란 것 자체가 일제의 억압과 차별을 받는 가운데 한반도의 주민집단이 서서히 발견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저의 제2장에서의 주장을 생각하면 답이 간단하게 나옵니다.

해방 직후 그 생성 중인 민족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채만식의 《역로》라는 소설이 재미있을 것 같아 소개합니다. 해방 몇 달 뒤에 채만식은 서울역에서 기차표를 사기 위해 세 시간이나 서 있었습니다. 창구 앞에서는 긴 행렬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암표 장사가 한창입니다. 기차표를 파는 역무원은 걸핏하면 거스름돈을 돌려주지 않습니다. 어느 중학생이 거스름돈을 떼이고 하는 말입니다. “아무튼 사람들의 질이 전보담 되려 떨어졌어. 걱정야.”

혼잡한 열차 속에서 겨우 자리를 잡은 채만식의 주변에서 열띤 정치 토론의 장이 벌어집니다. ‘늙은 농민’은 이승만을, ‘잠바 청년’은 여운형을 지지합니다. 어느 ‘시골신사’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찬양합니다. 열띤 토론은 천안역에서 중단됩니다. 유리창을 깨고 쌀 보퉁이를 들이밀면서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기어오릅니다. 여기저기서 고함과 함께 싸움이 벌어집니다. 부산에서 천안까지 쌀을 구하러 온 어떤 사람은 영악한 농민들이 일본으로 쌀을 밀수출하고 있다고 성토합니다. 그렇게 채만식의 눈에 미친 세태는 어지럽고 어두웠습니다. “백성이 아직 어리구 철이 아니 나서 그런가”, 아니면 “나이가 너무 많아 늙어빠져서 노망 기운으루다 그러는 것인가.”

해방 당시의 사회 실태와 관련해서는 《재인식》에 실린 전상인 교수의 논문, <해방공간의 사회사>가 유익합니다. 여기서는 민족이니 혁명이니 하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생활이 관찰의 주요 대상입니다. 이름 없이 살다간 보통 사람들이라 해서 그들이 무기력하게 그 시대에 놓여졌다고 이야기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그 시대의 주체로서 그 시대를 치열하게 겪어내고 적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차라리 그들은 《역로》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규탄하고 있듯이 더없이 영악했는지 모릅니다.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했던 것은 민족이니 계급이니 하는 거창한 정치 담론이 아니라 가족, 가문, 마을, 곧 그들의 전통적인 인간관계였습니다.

전상인의 논문에 의하면 해방 직후는 의외로 평온하였습니다. 북한 지역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만, 일본인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회는 조금씩 문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쟁 통에 억눌렸던 온갖 소비욕구가 분출하였습니다. 왕성한 쌀 소비가 대표적인 현상이지요. “쌀이 해방이야”, “쌀이 민족이야.” 그리고 애국가, 태극기, 3·1절 등과 같은 새로운 민족상징이 고안되고 널리 배포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군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지표들이었습니다. 전상인은 거론하고 있지 않습니다만, 미군의 위안부도 지표의 하나로 포함될 만하지요. 그런데 쌀이 일본으로 밀수출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방의 상징인 쌀이 부족해졌습니다. 여기저기서 매점매석이 벌어졌습니다. 미군정은 예상치 못한 사태에 당황하여 폐지했던 일제의 공출제도를 부활시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쌀을 강제수매 당하는 농민들이 불만입니다. 미군정이 일정보다 못하다는 무책임한 투정이 터져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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