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6- 흥선 대원군 과 민씨 세력 (국사 교과서 p108)

19세기 중엽 조선 사회는, 안으로는 세도 정치에 저항하는 민중 세력이 성장하고 있었고, 밖으로는 일본과 서양 열강이 침략해 오고 있었다.

고종의 즉위(1863)로 정치적 실권을 잡은 흥선 대원군은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로 외세의 침략을 일시적으로 저지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조선의 문호 개방을 늦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1873년에 고종의 친정으로 흥선 대원군이물러나고 민씨 세력이 정치적 실권을 잡았다.

일본은 한반도 침략을 노리며 운요호 사건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어 나라의 문을 열었다(1876). 강화도 조약은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었지만, 부산 및 다른 두 곳을 개항해야 했으며, 일본에 치외법권과 해안 측량권 등을 내준 점에서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어서 조선 정부는 미국과 조약(1882)을 맺은 뒤,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 서양 열강과도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들 조약 역시 치외법권과 최혜국 대우를 규정한 불평등 조약이었다.

조선 정부는 신식 군대인 별기군을 창설하였으며, 일본과 청, 미국에 사절단을 보내 신식 문물을 배우게 하였다.

구식 군인, 하층민 등에 의해 임오군란이 일어났다(1882). 이에, 민씨 세력은 청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서울에 들어온 청의 군대는 일시 집권한 흥선 대원군을 청으로 잡아갔고, 3년간 유폐하였다. 임오군란 이후, 청나라는 조선 내정에 대한 간섭과 경제 침략을 강화하였다.

메인 콘텐츠
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옛날사진 모음 친일파를 위한 변명 [목차](전문 게재) 대한민국 이야기 [목차](전문 게재) 동아일보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정 독도 바로 알기 화해를 위해서_박유하(일부발췌) 근대사 연표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