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9]-5 충성과 반역의 정신세계

[9] 일제가 이 땅에 남긴 유산  [9]-5 충성과 반역의 정신세계
마지막으로《재인식》에 실린 카터 에커트(Carter Eckert) 교수의 논문, <식민지 말기 조선의 총력전·공업화·사회변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이 논문 역시 식민지기와 해방 후의 연속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에커트 교수가 연속성의 화두로 잡은 것은 전쟁입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20세기는 전쟁의 역사였지요. 노일전쟁(1904),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태평양전쟁(1941), 한국전쟁(1951), 베트남전쟁(1967) 등등이지요. "이들 전쟁 가운데 만주사변에서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15년간만큼 한국인에게 직접적이고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없었다. 전쟁은 한반도를 제국의 공업화된 기지로 변형시키면서 조선의 경제구조를 극적으로 뒤바꾸어 놓았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사회경제적 변화, 곧 근대화가 유발되었다. 그에 따라 조선인으로서 노동자와 기술자와 기업가와 관료의 수가 늘어나고 그 질이 향상되었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린 한국의 급속한 근대화혁명을 주도한 박정희를 위시한 장교 그룹도 바로 그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이상이 에커트 교수의 논문입니다.

몇 가지 논점을 제외하고 저는 에커트 교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예컨대 그는 1960년대 이후 국가주도형의 개발 모형이 이미 식민지기에 성립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재인식》에 실린 김낙년 교수의 논문이 잘 비판하고 있는 그대로 동의하기 힘듭니다. 총독부가 박정희 정부만큼 경제개발에 적극적인 의지를 가지고 경제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보기는 힘들지요. 그건 그렇고, 인적 자본의 면에서 해방전후사를 연속적으로 보고있는 에커트 교수의 시각에 대해 저는 이의가 없습니다. 더구나 이후 근대화 혁명을 주도한 장교단이 일본군 내에서 배양되었다는 지적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그들은 원래 일본 천황에 충성을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전쟁과 전쟁의 시대에 식민지의 아들로 태어나 나폴레옹처럼 위대한 군인이 되고 싶었던 스무 살 나이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친일파였다는 비판에 저는 아무런 지적 긴장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그들의 내면세계는 어떠했을까, 거기서 충성과 반역의 대상으로서 민족은 얼마나 실체적이었던 것일까, 천황을 위해 죽겠다는 맹세의 정신세계는 역설적으로 충성의 대상이 대한민국으로 바뀌었을 때 같은 식의 맹세로 이어질 논리적 필연을 안고 있지 않은가, 그 논리적 필연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 내면의 논리적 필연에까지 분석의 손길이 미친 연구는《재인식》에 없습니다. 그런 고급의 논문을 읽기 위해서는 좀 더 기다려야 되는 모양입니다.

메인 콘텐츠
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옛날사진 모음 친일파를 위한 변명 [목차](전문 게재) 대한민국 이야기 [목차](전문 게재) 동아일보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정 독도 바로 알기 화해를 위해서_박유하(일부발췌) 근대사 연표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