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9]-1 개발(development)의 뜻

[9] 일제가 이 땅에 남긴 유산  [9]-1 개발(development)의 뜻
1945년 8월 15일, 일제는 패망하였습니다. 영구병합과 동화정책의 구호가 그토록 요란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황급하게 고향으로 철수했습니다. 아무도 남아 달라고 붙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토록 허망했던 것이 일제의 동화정책이었습니다. 역시 처음부터 되지도 않을 무리한 프로젝트였지요. 그런데 일제가 철수한 뒤의 조선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시 1910년 대한제국이 패망할 그 당시로 복귀한 것일까요. 식민지수탈론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할지 모릅니다. 마치 난폭한 구둣발에 짓밟혀 있던 풀이 구둣발이 치워지자 다시 허리를 펴는 식의 그러한 원상회복을 말입니다. 그래서 잃어버린 나라를 다시 찾았다고도 하지요. 공식적으론 ‘광복’이라 합니다. 다 잘 아시는 대로 대한민국의 가장 큰 국경일은 ‘광복절’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식의 원상회복론에 찬성하기 힘들군요. 식민지 지배는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화학적인 작용이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제5장에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소개하면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식민지기에 식민지적 형태의 근대화라는 변화가 있었음을 주장하는 학설이지요. 그에 따라 사회와 경제의 구조가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인간들이 옛날의 그 인간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경제학에서는 발전 또는 개발이라 합니다. 영어로는 development라고 하지요. 이는 성장, 영어로 말해 growth와는 상이한 개념입니다. 성장은 사람의 키가 크는 것과 같은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국민 소득이 1,000달러에서 2,000달러로 되는 것, 그것이 성장입니다. 그러나 개발, development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영어 단어의 기원은 생물학에서 나왔습니다.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과정, 바로 그것이 개발입니다. 모양과 기관이 바뀌고 복잡화하는 것이지요. 한 사회가 역사적으로 개발되었다거나 발전했다고 하면, 그것은 그 사회의 운동 원리와 그 사회의 부속 기관이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어 마치 성충이 애벌레로 돌아갈 수 없듯이 불가역적인 변화를 겪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 전에 허수열 교수가《개발 없는 개발》(은행나무, 2005)이란 책을 내어 우리의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였습니다. 식민지수탈론 측에서는 기다리던 용사가 나타났던 식으로 반겼던 것으로 압니다. 이 책의 요지는 식민지기에 총소득이 증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모두 일본인 차지가 되고 조선인의 소득 수준에는 변함이 없었다는 겁니다. 허 교수는 이를 통계로 입증한다고 애를 썼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일종의 편집증에 가까운 추론에 불과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재인식》에 실린 주익종 박사의 논문이 잘 꼬집고 있고, 또 김낙년 교수도 별도의 서평을 통해 그 논리적 모순을 명확히 하고 있기 때문에(《경제사학》38, 2005) 여기서는 그에 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개발’이란 말이 아주 잘못 쓰이고 있음에 대해선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허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성장 없는 성장’이라 해야 옳지요. 그는 개발이 원래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가 진정 ‘개발 없는 개발’을 입증하고 싶었다면 일제가 사유재산제도를 비롯하여 근대적 경제환경을 조성하여도 조선 사람들은 그에 도무지 적응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미개하였음을 증명하든가, 아니면 일제가 조선 사람들의 근대적인 경제활동을 철저하게 봉쇄하여 영구병합의 동화정책을 처음부터 포기하였음을 주장하든가 해야지요. 저는 ‘개발 없는 개발’을 한갓 희언(戱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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