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8]-2 군에 의한 여성의 성 약취(1)

[8] 그날 나는 왜 그렇게 말하였던가  [8]-2 군에 의한 여성의 성 약취(1)
제가 볼 때 일본군 위안부라는 역사적 사건은 다음의 세 가지 수준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군에 의한 여성의 성 약취(略取)의 수준입니다. 둘째는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의 수준입니다. 셋째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가부장적 지배의 수준입니다. 이 세 수준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얽혀 있는 것을 잘 풀어낸 다음 다시 잘 종합해야 사건의 전체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군에 의한 여성의 성 약취와 관련해서는 역사적으로 겁탈, 관리매춘, 자유매춘의 세 가지 방식이 있었습니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전쟁 때마다 여성들이 어떻게 비참하게 겁탈이나 능욕을 당했는지 일일이 소개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예가 있습니다. 겁탈은 병사의 굶주린 성욕을 채울 뿐 아니라 피점령 주민들에게 더 없는 공포심과 좌절감을 안겨주어 복종심을 유발하는 점령정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전쟁 때마다 대량의 겁탈이 구조적으로 발생했던 겁니다. 인류의 양심이 진보하여 1907년이 되면 겁탈을 전쟁범죄로 규정한 ‘헤이그육전협약’ (陸戰協約)이 체결됩니다. 그래도 별무소용이었습니다. 1945년 4월 베를린이 함락될 때 스탈린의 붉은 군대는 베를린 여성의 50%, 약 10만 명을 겁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베트남, 콩고, 방글라데시, 우간다의 전쟁에서도 대량의 겁탈이 자행되었습니다. 극히 최근의 사례로서는 1991년의 구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들 수 있습니다. 세르비아계 병사들이 비세르비아계 주민의 추방을 목적으로 처녀들을 공개 장소에서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집단 겁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전쟁범죄가 많이 사라질 것입니다. 미국 군대가 이미 그러한데요, 여성들이 전투병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랍니다. 남녀 혼성의 군대는 병사들 간의 사랑으로 전투력도 강해지고 민간인 여성의 피해도 줄인다는군요.

다음은 일본군 위안부 사건의 무대이기도 했던 중일전쟁에 참여한 조선인 병사의 증언입니다. 경북 예천군의 어느 마을을 조사하다가 일본군으로 징병되어 중국 호북성 장사현 부근에서 전투를 치르고 돌아온 어느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혹시 실례되는 말씀일지 몰라도 위안소에 한번 안 가봤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평생 누구에게도 털어 놓은 적이 없는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전쟁이 자신을 방위할 능력이 없는 여성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예, 나도 구경하러 한번 가봤어요. 일요일에 거기 구경하러 가보니 벽돌집이 있는데 보니까 줄을 쭉 서서는 하나 들어갔다가 나오면 하나 들어가고. 그런데 거기 오래 생활하는 사람들은 거기 위안부 안가요. 왜 안가냐 하면 거기 아니라도 조금 나가면 처자들이 천지라요. 강탈합니다. 하메, 한 일 년만 거기 있는 사람 보면 그래요. 부락에 가면 처자, 중국 처자 참 이쁩니다. 참 인물 있어요. 첫 번에는 말을 안들을 거 아니래요. 죽이려 그러는데 우에요. 말을 듣지요.

메인 콘텐츠
통계로 보는 일제시대 옛날사진 모음 친일파를 위한 변명 [목차](전문 게재) 대한민국 이야기 [목차](전문 게재) 동아일보 한국어로 번역된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 대한제국의 황실재정 독도 바로 알기 화해를 위해서_박유하(일부발췌) 근대사 연표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