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7]-3 기억의 집단화, 공식화

[7]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실체  [7]-3 기억의 집단화, 공식화
이윽고 1979~1982년이 되면 역사교과서에 “젊은 여자들까지도 산업시설과 전선으로 강제로 끌어갔다”는 기술이 나타납니다. 여인들이 전선으로 끌려간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아직 위안부라는 기술은 명시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만, 끌려간 여인들이 위안부로 희생되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교과서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1983~1996년간에는 “여자들까지도 침략 전쟁의 희생물로 만들었다”라고 하여 애매하긴 하지만 좀 더 강력한 암시의 서술이 나타납니다. 드디어 1997~2001년의 교과서에 이르면, “이때 여성까지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끌려가 일본군의 위안부로 희생되기도 했다”고 하여 정신대와 위안부를 등치시키는 기술이 명확하게 성립하지요. 이후 2002년부터 지금까지는 “젊은 여성들을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하여 군수 공장 등지에서 혹사시켰으며, 그 중 일부는 전선으로 끌고 가 일본군 위안부로 삼는 만행을 저질렀다”하여, 약간 바뀌긴 했습니다만, 위안부가 당초 정신대로 동원된 여자들인 점에서는 마찬가지의 서술을 보이고 있습니다.

1997년부터 교과서에서 정신대를 위안부와 등치시키는 기술이 나타나게 된 것은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였던 자신의 과거를 공개하면서 일본정부의 배상을 요구한 사건이 큰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곧이어 일본의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에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공문서가 발견되었지요. 그러자 일본정부도 일본군의 관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담화를 발표했으며, 뒤이은 양국의 정상회담에서 사죄의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후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가 양국에서 결성되어 생존 위안부를 찾아내고 숨어 있는 자료를 발굴하는 등 활동을 활발히 전개함으로써 위안부의 실태와 역사가 상세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응하여 일본정부는 수상이 생존 위안부들에게 사죄의 편지를 내고 관민 합동으로 ‘국민기금’이라는 자금을 조성하여 대략 3천만 원씩의 보상금을 지급코자 하였습니다만, 한국 측에서는 할머니들이 수령을 거부하면서 일본국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 대신 한국정부로부터 위에 상당한 생활지원금을 지급받고 또 매달 70만 원 정도를 생활안정지원금으로 지원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과정에서 일본에서 볼 수 없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의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은 위안부 문제가 불거져 나온 1991년 그때부터 위안부를 정신대로 불러 왔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도 위안부 문제를 위한 한국의 시민단체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요. 196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정신대와 위안부를 등치시키는 국민의 집단기억은 1990년대에 이르러선 누구도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꽤 강고하게 자리 잡은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1991년 이후 언론의 공로도 컸다고 생각합니다. 1992년 어느 신문은 1944년 8월에 공포된 ‘여자정신근로령’을 법전에서 찾아 낸 다음 일제가 한반도에서 조직적으로 위안부를 징발한 확실한 증거를 포착하였다고 일면 톱으로 대서특필하였지요. 이 기사는 지금 네이버 백과사전에서도 그대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또 어느 신문은 한술 더 떠서 “12~13세의 젊은 생도는 근로정신대에, 15세 이상의 미혼 소녀는 종군위안부로 연행되었다”고 썼습니다. 이렇게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어린 소녀들이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위안부로 강제 연행되었음을 보도하는 가운데, 위안부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하는 소설과 영화가 뒤를 따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97년 국정교과서의 6차 개정에 이르러 위와 같은 기술이 역사교과서에 나타나게 된 것은 이 같은 시대적 배경에서였습니다.

앞서 저는 대중의 집단기억으로서 역사는 많은 경우 비교적 가까운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러면서 백두산 영산설과 일제의 토지수탈설을 그 예로 들었습니다만, 지금의 정신대 설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약 175명의 여인이 자신이 위안부로 된 불행한 역사를 고백하였습니다만, 그 가운데 당초 정신대로 동원되었다고 증언한 사람은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점을 증명해 보려고 여러 연구자가 많은 애를 썼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두 역사적 사실은 처음부터 별개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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