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6]-5 제국의 이등시민으로서

[6] 협력자들  [6]-5 제국의 이등시민으로서


대동아공영권의 판도

대동아공영권의 판도

이광수나 최정희와 같은 적극적인 협력자들이 조선이 일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순수하고 정직한 민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조선의 자손들이 살길이라고 생각한 것은 당시 일본제국의 판도가 공간적으로 대폭 확장하고 있었던 객관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931년 일제는 만주를 침략하여 만주국을 세운 다음, 1937년에는 중국과 전면전을 벌여 중국의 주요도시를 점령하였으며, 1941년부터는 미국과 태평양전쟁을 벌여 동남아시아와 호주를 제외한 남태평양 전역을 장악하지요. 일본제국은 실로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빛나 보였습니다. 그 일제로부터의 독립은 실현 불가능으로 보였습니다. 그 대신 넓어진 제국의 판도는 조선인에게는 자연스럽게 제국의 이등시민 지위를 부여하였습니다. 원래 내선일체(內鮮一體)라 했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조선인 스스로 이등시민을 자처하면서 반도를 벗어나 만주로, 중국으로, 동남아로 활발히 진출하였던 것이 1930~40년대였습니다.

그 점을 잘 보여주는《재인식》에 실린 논문이 김철 교수의 <몰락하는 신생ㅡ만주의 꿈과 《농군》의 오독>입니다. 이 논문도 문학에 문외한인 저에게 큰 자극으로 읽혔습니다. 이 논문에서 김철 교수는 식민지기의 민족문학을 대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온 이태준의 소설 《농군》이, 실은 일제의 만주개발 정책에 잘 부응한 국책소설이라고 잘라 말합니다. 친일문학을 지금까지 민족문학으로 간주했다니, 그럴 수도 있는가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습니다만, 김철 교수의 해부는 날카롭기 짝이 없습니다. 1938년 이태준은 몇 사람의 문인과 동행하여 만주를 여행합니다. 만주로 이민 간 조선 농민의 마을을 시찰할 목적에서였지요. 그 마을은 1931년의 이른바 만보산(萬寶山)사건으로 유명한 그 마을이었습니다. 1931년 만보산에 들어온 조선 농민은 만주의 밭을 논으로 개간하기 위해 20여 리나 떨어진 강에서 물을 끌어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토민이라고 무시한 주변의 중국 농민과 충돌이 발생합니다. 중국 농민들의 땅을 함부로 침범했던 것이지요. 중국 농민들이 들고일어나 수로를 파괴하자 조선 농민들은 일본영사관에 도움을 요청하여 중국인들을 물리칩니다. 그 과정에서 쌍방에 사람이 죽거나 다친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해 7월 국내의 조선일보가 만주의 중국인들이 조선 농민을 습격하여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오보를 내지요. 그러자 전국 도처에서 화교들에 대한 물리적 공격이 벌어집니다. 평양이 가장 심하였는데, 무려 127명의 화교가 살해당하고 393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것이 만보산사건의 전말입니다. 그 사건 7년 뒤 만주를 여행한 이태준은 ‘식민지 모국의 지식인’처럼 만주의 이 도시와 저 도시를 이국취향으로 즐겼을 뿐 아니라 만보산에 들러 만주 개척의 성공 실태를 확인하고 만족스러워합니다. 만주는 그렇게 조선 농민의 덕분에 마적이나 출몰했던 황무지에서 풍요로운 땅으로 바뀌었습니다. 소설《농군》은 겉으로 보기엔 고향을 떠나 험한 만주 땅에서 힘써 개간에 성공하는 한 진취적인 조선 농군을 다룬 민족소설 같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김철 교수는 소설이 전제하고 있는 시대적 맥락을 위와 같이 짚어 냄으로써 민족소설로 알려져 온 것을 단번에 친일 국책소설로 뒤집어 버렸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저는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인들이 한반도로 건너와 여기저기에 농장을 차리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그 때 주변의 조선 농민과 많은 충돌이 발생했는데 그 역시 수리 시설 때문이었습니다. 1930년대가 되자 만주에서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였군요. 앞에서는 일본인이 조선인을 멸시하였는데, 뒤에서는 조선인이 중국인을 멸시하고 있군요. 비슷한 이야기를 싱가포르의 수상 리콴유의 자서전 《일류국가의 길》(문학과 사상사, 672쪽)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리콴유는 자기의 한국인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했을 때 한국인 ‘외인부대’가 뒤를 따라 들어왔는데 몹시 거칠었고 일본군만큼이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는군요. 아마도 일본군의 뒤를 따른 조선인 군속들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제국의 판도가 넓어지면서 조선인은 다른 약소민족에 대한 억압자로 변신하고 있었습니다. 협력의 전선이 국제적으로 확장되면서 협력의 내용까지 바뀌어 간 것입니다. 다음 장에서 다룰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그러한 예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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