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6]-1 제국주의의 조건

[6] 협력자들  [6]-1 제국주의의 조건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군사력이 강력했기 때문입니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중국과 서유럽의 군사력은 비등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영국을 필두로 서유럽의 여러 나라가 산업혁명을 수행하고 난 19세기부터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지요. 동아시아에서 서유럽의 제국주의 지배 체제가 성립한 것은 필경 그 때문이었습니다. 서유럽의 무기는 막강하였습니다. 예컨대 1898년 영국군은 20정의 기관총을 가지고 불과 몇 시간 내에 1만 1,000명의 수단인을 사살하였습니다. 영국군의 사상자는 불과 348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렇게 제국주의의 상징은 총이였습니다. 이외에도 제국주의를 가능케 한 것으로 전신, 증기선, 철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교통·통신혁명으로 제국주의의 군대는 신속하게 원주민의 저항을 진압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식민지 지배의 경제적 수익성을 드높일 수 있었습니다. 키니네의 발견이 제국주의를 가능케 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지요. 유럽인들이 열대 지역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말라리아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키니네의 덕분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지배는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일제의 조선 지배를 보더라도 총으로 상징되는 물리적인 힘이 노골적으로 동원된 것은 3·1운동 당시의 1회로 국한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국주의의 지배는 정신적이며 문화적인 것이기도 했습니다. 제국주의는 새로운 질서였습니다. 제국주의는 진보의 화신처럼 보였습니다. 그렇게 제국주의는 자기 자신을 새로운 문명의 메신저로 선전합니다. 그리고 식민지의 많은 사람이 그러한 선전에 동의하게 됩니다. 그들은 슬슬 제국주의의 협력자로 변해 가지요. 그들은 그들의 협력으로 그들의 민족이 제국과 같은 선진 문명으로 발전해 갈 것으로 믿습니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협력했던 것이지요. 따지고 보면 식민지에서 제국주의자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손에 총을 들고 있긴 했지만 그들은 낯선 지방에서 다수의 적대적인 원주민에 둘러싸여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의 식민지 지배가 가능하였던 것은 그들에게 우호적인 다수의 협력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협력자를 더 이상 끌어낼 수 없거나 협력자들이 등을 돌릴 때 제국주의는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니까 제국주의의 역사는 동시에 협력자의 역사이기도 했습니다.

식민지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은 가장 많을 때 75만여 명으로서 전체 인구의 2.7%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주로 도시와 항구에 거주하였으며 내륙이라도 철도가 통하는 지역을 멀리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순 농촌부로 들어가면 한 면에 주재소 순사, 소학교의 교장과 교사, 수리조합과 금융조합의 직원 등을 합쳐 그 수가 대여섯을 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총독부의 지배체제는 꽤 강건하게 효율적으로 작동하였습니다. 다수의 자발적인 협력자 덕분이었습니다. 이제까지 한국의 역사가들은 민족의 부끄러운 면이라 하여 이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되풀이되고 있습니다만 민족만이 역사의 주체는 아니지요. 역사에 있어서 궁극의 주체는 개별 인간입니다. 그렇게 역사에 대한 시선을 조정한 다음 식민지기를 살았던 인간들의 삶 자체를 중심에 놓고 역사를 풀어가야 마땅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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