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4]-4 만들어진 기억의 상업화

[4] 식민지 수탈론에 대하여  [4]-4 만들어진 기억의 상업화
1997년 저를 포함한 몇 사람의 연구자들이 토지조사사업 당시의 원 자료에 기초하여 《조선토지조사사업의 연구》(민음사, 1997)라는 연구서를 출간하였습니다. 이후 이전과 같은 난폭한 수탈설은 많이 수그러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교과서의 서술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군요. 한번 만들어진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법입니다. 선진사회라면 그러한 일이 있기 곤란합니다. 거기서는 학술세계를 지배하는 엄격한 심판자 그룹이 있어서 옳고 그름에 대해 거역할 수 없는 판정을 내립니다. 그에 비해 후진사회는 엄격한 심판자 그룹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뭐가 옳고 그른지를 대중은 물론 연구자조차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대중의 집단기억과 관련된 문제라면 더욱 그러하지요. 한번 권력화한 대중의 집단기억은 좀처럼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좀 불쾌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한국사회는 아직 이 같은 후진사회의 특질을 많이 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회가 그런 후진적 양상을 떨치지 못하는 데는 상업화 된 민족주의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신용하 교수가 “한 손에는 피스톨을 다른 한 손에 측량기를 들고”를 이야기했지만 실제 피스톨이 발사된 사건을 하나라도 제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사가의 그런 한계는 역사소설가에 의해 곧잘 매워집니다. 1994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조정래의 장편 역사소설 《아리랑》 아홉 권이 그 좋은 예이지요. 다 합하여 무려 3백만 부가 팔린 소설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의 앞부분은 토지조사사업 당시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그 무대에서 사업의 실무를 맡은 조선인 모리배들이 일본인 순사와 결탁하여 신고가 무엇인지 모르는 어리석은 농민들의 토지를 수탈하고 있습니다. 토지를 빼앗기게 된 농민이 모리배에 항의하다 몸을 밀쳐 상처를 입힙니다. 그러자 일본인 순사가 그 농민을 나무에 묶어 놓고 즉결 처분으로 총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설가의 상상력이 지나쳐 소름이 끼칠 지경입니다. 이 소설가는 당시가 비록 식민지이지만 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일개 순사가 사람을 즉결로 처형하다니요. 일제가 1911년에 공포한 조선형사령(朝鮮刑事令)이란 법에 그런 조항이 있는지 묻고 싶군요. 그렇게 그 시대는 한 소설가에 의해 더없는 야만의 시대로 그려졌습니다. 마치 포르투갈의 모험 상인들이 아프리카 남미의 미개 지역에 들어가 마구 분탕질치는 식으로 식민지기의 농촌사회를 그리고 있습니다. 본의가 아니겠습니다만, 그 소설에서 우리 민족은 동네 사람이 죄 없이 총살당해도 그저 보고만 있는 나약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야만인들로 그려져 있습니다. 과연 그랬던가요. 어쨌든 그 소설을 읽은 수많은 젊은이가 그 시대를 야만의 시대로 알겠지요. 그리고선 야만인처럼 난폭하게 지난 20세기의 역사를 사고하겠지요. 그것이 두려워서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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