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3]-3 성리학의 정치원리

[3] 조선왕조는 왜 망하였나  [3]-3 성리학의 정치원리


[김옥균] 문명개화파의 선구자

[김옥균] 문명개화파의 선구자

그런데 어느 문명이 해체되는 것은, 아주 예외적으로 홀로 고사(枯死)하는 예도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미 쇠약해진 단계에서 다른 강대한 문명의 충격을 받아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다 잘 아시는 대로 20세기의 위대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문명과 문명의 접촉과정을 도전(challenge)과 응전(response)의 패러다임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강대한 문명으로부터 도전이 주어졌을 때 성공적으로 응전한 문명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문명은 소멸합니다. 성공적인 응전에는 창조적 소수의 지도적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전의 성격을 이해하고 올바른 대응을 강구하는 것은 대중이 아니라 소수의 창조적 지성이지요. 그리고 대중이 창조적 소수의 지도를 신뢰하고 따라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좋은 순환의 신뢰관계가 성립해 있는 문명은 응전에 성공하여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대조적으로 창조적 소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또한 대중이 그에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문명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메이지유신의 일본이 전자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조선왕조는 후자에 속하지요. 김옥균을 위시한 이른바 개화파라는 창조적 소수가 없지 않았습니다만, 그들의 세력은 너무나 미약하였고 또 대중이 그들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조선왕조의 위정자들이 제국주의의 침입에 성공적으로 응전하지 못한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 이미 오래 전부터 체제의 혼한이 있어 온 데다 인간, 사회, 국가, 세계를 바라보는 그들의 질서 감각이 낡은 문명의 원리에 너무 깊숙이 고착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 조선의 전통문명은 견고한 자기완결성을 특징으로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조선왕조의 정치이념을 살펴봅시다. 조선왕조는 성리학의 정치원리에 기초하여 백성을 통치하였습니다. 거기서 왕은 하늘을 대신하여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서 신성불가침의 권위를 누렸습니다. 하늘은 무엇입니까. 삼라만상을 만들어 낸 지극한 이치로서 앞서 잠시 언급한 태극이지요. 태극의 지극한 이치는 인간사회의 성립과 관련해서는 삼강오륜(三綱五倫)의 도덕을 의미하였습니다. 왕은 하늘을 대신해서 이 도덕을 대변하고 수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에 백성이 그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자식이 그 부모에 효도를 다하고 아내가 그 남편을 정성으로 섬기면, 하늘도 부응하여 세상만사가 평화롭고 풍요로워진다는 것이 성리학의 정치원리였습니다. 이 성리학의 정치에서 백성은 왕의 발가벗은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왕은 어린 백성을 자애롭게 보살펴야 했고, 백성은 부모를 섬기듯 왕에게 충성을 바쳐야 했지요. 이렇게 가족제적 혈연 원리에 기초한 정치에서 백성은 정치적으로 무권리였습니다. 조선왕조의 시대에 나라[國]라 하면 어디까지나 왕과 양반관료들의 나라로서 곧 조정(朝廷)을 의미하였지요. 오늘날과 같은 민권사상이나 대의제적 정치에 입각한 국가관은 조선왕조와 무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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