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는 안 되는 일제시대의 진실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 일제강점기의 실상

[3]-1 문화적 민족주의 비판

[3] 조선왕조는 왜 망하였나  [3]-1 문화적 민족주의 비판
《재인식》에 실린 논문의 주제는 아닙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과 관련하여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펼치려면 한 가지 피해갈 수 없는 문제가 있군요. “조선왕조는 왜 망하였나”라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이 문제만 나오면 사람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집니다. 잘못 말했다가 큰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런 사람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학자들은 조선왕조가 망한 원인에 대해 잘 이야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역사교과서를 보더라도 조선왕조가 망한 원인에 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문맥 그대로라면 일제가 쳐들어왔기 때문에 조선왕조는 망했다는 겁니다. 그것은 어김없는 사실입니다만, 의미 없는 동어반복에 불과하지요. 그런 식이라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자세에 불과합니다. “일제가 쳐들어왔는데 왜 막지 못했는가”하고 진지하게 되물어야 합니다. 조선은 큰 나라입니다. 일본에 비해 국토가 2/3나 되고 인구가 1/2이나 되지요. 그런 큰 나라가 왜 그렇게 맥없이 무너졌던가. 고통스럽지만 그러한 질문을 성찰의 화두로서 던져야 합니다.

역사학자들이 그러한 질문을 잘 던지지 않은 것은 한 가지 그럴듯한 모범답안이 제시되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한영우 교수가 그의 《다시 찾는 우리역사》(경세원, 1997)에서 제시한 ‘선량한 주인’과 ‘강포한 도둑’이라는 비유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의하면 조선왕조의 문화와 도덕은 아름다운 보석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조선왕조의 문민정치는 이미 서유럽의 근대 민주주의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지요. 그러한 조선왕조가 망한 것을 두고 조선왕조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강포한 도적’은 놓아 두고 ‘선량한 주인’만을 탓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이라는 겁니다. 도둑이 들어왔으니 싸움을 하자고요. 그것은 무(武)를 중시하는 야만인들이나 하는 일이죠. 다시 말해 조선왕조는 너무나 선량하여 강포한 외적을 막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같은 한 교수의 ‘선량한 주인론’은 20세기 전체의 역사적 이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으로 발전할 논리적 필연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좀 더 주의 깊게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요컨대 강포한 도적이 든 이후 조선의 선량한 문화는 모조리 망가지고 말았습니다. 이 점은 해방과 건국 이후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개발에 성공해서 그런대로 물질은 얻었습니다만, 그 대가로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와 정신은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난 20세기는 좌절과 상실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 교수는 저 아름다웠던 조선왕조의 이념과 도덕을 다시금 친근하게 쳐다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같은 한영우 교수의 근·현대사 해석을 문화적 민족주의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전장에서 소개한 대로 《인식》 여섯 권의 현대사 해석은 마오쩌둥의 혁명이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급적 민족주의 또는 좌파 민족주의라고 할 수 있지요. 그에 비해 한 교수의 민족주의는 전통시대의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적 민족주의 또는 우파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 있지요. 우파라는 규정에 대해서는 좀 설명이 필요합니다. 제가 보기에 한 교수의 ‘선량한 주인론’은 보통의 한국인들이 쉽게 공감하는, 좀 더 강하게 표현하면 그들의 역사에 대한 욕구를 시원하게 채워 주는, 그래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요사이 전통시대 특히 18세기의 문화에 관한 연구서가 대중적인 베스트셀러의 목록에 자주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 우리 문화는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하였나. 이미 그때에 현대 문명이 앓고 있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해결할 담론들이 활발히 펼쳐지고 있었어.” 대개 이런 내용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이런 연구들이 오늘 날 한국의 인문학계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 대중적 기반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기분 좋아하며 기꺼이 책을 사보는 중산층에 있다고 하겠는데, 그들의 정치적 성향은 대개 우파이지요. 그래서 우파 민족주의라고 한 것입니다.

문화적 또는 우파 민족주의의 사회적 기반은 계급적 또는 좌파 민족주의보다 훨씬 넓습니다. 계급노선에 기초한 좌파 민족주의는 이미 사회주의 국제체제가 붕괴한 마당에 점차 그 영향력을 잃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아직 한국의 현실 정치와 남북관계에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문화적 민족주의라는 우군이 있기 때문이지요. 실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정치적 성향은 대단히 불안정하고 기회주의적입니다. 우파인 이상 그들의 현실 인식은 대개 보수적입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민족문제와 관련된 이슈가 제기되면 쉽게 좌파 민족주의에 동조하지요. 그쪽으로 휩쓸려 버리는 겁니다. 최근에 어느토론회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한국의 중산층은 “오른쪽으로 살면서 왼쪽으로 생각한다”(live right, think left)고 하는 군요. 그렇게 한국의 중산층은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인 정체성 위기의 상태입니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자신도 헷갈리지요. 지식인들도, 교수라는 사람들도 대개 마찬가지예요.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여서 여기서는 이 말, 저기서는 저 말, 도대체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닙니다. 그 중요한 이유를 저는 문화적 민족주의의 기회주의적 속성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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